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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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19.12.17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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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10년 전, 엄마가 치매로 병원에 들어가시고 우리는 엄마와 함께하는 김장은 끝이라고 생각했다. 친정엄마는 자식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 한 포기라도 더 해 줄 욕심에 텃밭에는 언제나 김장 배추와 무를 가득 심어 놓으셨다.

그것만 해도 백 포기는 훨씬 넘어 엄마는 이웃의 김장을 도와주고 배추를 얻어오시곤 했다. 그러다 보니 이백 포기 가까이 김장을 하는 격이었다. 엄마는 자식들 힘들까, 전날부터 아버지와 두 분이서 밭에서 배추를 뽑아 절이고 마늘과 파 등 부재료를 다듬어 놓으셨다.

그다음 절인 배추를 씻는 것은 언니와 내 몫이었다. 워낙 양이 많다 보니 신새벽부터 씻기 시작한 배추는 오전의 반을 다 채우고 나서야 끝이 났다. 그렇게 시작한 김장은 그날 밤늦은 시간 마무리되었다.

친정에서의 김장은 엄마의 과한 욕심 때문이었을까 즐겁지가 않았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그다음 해부터는 절임 배추를 주문해 김장을 했다. 남편과 아이들이 함께하는 김장은 정말 재미있었다. 아이들 줄 생각에 돼지고기 수육거리도 사다 놓고 양념도 아이들이 오기 전에 미리 준비를 해 놓았다.

아마도 엄마가 우리를 생각했던 마음이 이런 것 아니었을까. 김장은 저녁나절에 다 끝났다. 그런데 김장은 빨리 끝났지만, 김치 맛이 문제였다. 양념도 엄마가 해주시던 것보다 더 많이, 좋은 것으로 했음에도 맛은 그것만 못했다.

그것은 바로 배추가 문제였다. 절임배추를 잘못 산 것이었다. 며칠이 지나 꺼낸 김치는 물컹해져서 먹지 못하기도 했고, 어떤 해는 배추가 고소한 맛이 없고 크기만 했던 적도 있었다. 엄마가 키운 배추는 속도 꽉 차지 않고 크기도 적당했으며, 반으로 자르면 노란 속대가 얼마나 예뻤는지 모른다.

맛은 또 얼마나 좋은지 달짝지근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났다. 엄마는 배추에 농약을 치는 법이 없었다. 배춧속에 있던 벌레는 당신이 직접 하나하나 다 잡아내곤 하셨다. 그렇게 키운 배추이니 얼마나 맛이 있었을까. 그것도 모르고 나는 엄마의 욕심을 원망하곤 했었다.

그렇게 몇 년을 나는 우리 집에서 아이들과 김장을 했었다. 그런데 몇 년 전 서울에서 살고 있던 언니는 형부의 시댁 동네에 농막을 지어 놓고 주말마다 내려오며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시부모님은 다 돌아가셨지만, 그곳에는 물려주신 땅이 제법 있었던 모양이었다.

농사짓는 것에 젬병인 나와는 다르게 언니는 시골에서 농사짓고 사는 것을 행복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언니는 그곳에 이것저것 남새들을 많이도 심었다. 그러더니 이제는 배추까지 심어 놓기 시작했다. 언니가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다음해 김장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해가 지날수록 배추 포기 수가 늘기 시작했다. 작년에는 백포기 가까이했다. 언니의 농사 솜씨는 엄마를 닮아서인지 야무지고 알차다. 배추도 엄마 배추처럼 속대가 노랗고 달짝지근한 게 맛이 있다. 나는 앞으로 언니와 함께 김치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솔직해 지기로 했다. 배추 좀 조금만 심자고 했다. 김장을 즐겁게 하려면 언니의 넘치는 사랑도 줄여 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요즘 `김장'이 또 다른 `제사'가 되고 있다는 말이 있다. 명절이나 집안의 제사가 끝나고 나면 이혼율이 급증한다는 것처럼 김장 또한 시댁과의 골이 깊어지는 이유가 된다는 것이다. 김장은 우리의 전통문화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점점 간편화되어가는 것이 트렌드가 된 젊은 세대로서는 김장은 번거롭고 귀찮은 일밖에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시대가 변할수록 가치도 변하고, 문화 또한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김장의 문화를 외면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소중한 김장의 문화도 지키고 젊은 세대와의 이해와 소통을 이끌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김장을 하는 우리 기성세대들의 몫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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