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의 젊은 정치
핀란드의 젊은 정치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9.12.15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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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34세에 국가 지도자가 된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가 세계적인 화제가 되고 있다. 그는 27세 때 시의원으로 정치활동을 시작해 국회의원(재선)과 장관을 거쳐 7년 만에 총리에 올랐다. 세계를 자극한 이 신선한 뉴스가 우리 정치인들에게도 감동을 줬는지는 모르겠다. 낯을 붉힌 정치인도 더러 있었을 것이다. 갈수록 늙어가는 우리 정치판과 비교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20대 국회의원의 당선 당시 평균연령은 55.5세이다. 역대 최고령 의회다. 40세 미만은 1%인 3명에 불과했다. 단체장 중에서는 광역과 기초를 통틀어 40세 미만이 한 명도 없다. 지금 하마평에 오르는 차기 총리 후보들도 모두 70을 넘겼다.

핀란드 국회의원의 평균연령은 47세다. 내각도 비슷하다. 재무·내무·교육 등 요직 장관 3명이 30대다. 40대 장관이 7명, 50대가 5명, 60대는 3명에 불과하다. 장관 평균 나이가 60살을 넘는 우리와 차이가 현격하다. 국회도 내각도 40대가 중심에서 주도한다는 얘기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마린이 세계 최연소 총리라거나 여성이라는 단편적 사실이 아니다. 젊은 여성 정치인도 능력이 있으면 무럭무럭 자랄 수 있는 토양과 시스템이다. 핀란드에서는 18살만 되면 투표권은 물론 피선거권까지 누릴 수 있다. 이 나라에서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이 지방의원에 출마해 당선되는 것은 뉴스거리도 아니다. 15살부터는 정당에 참여해 정치 활동도 할 수 있다. 지자체마다 13~18세 청소년들이 참여하는 `청년의회'를 운영하며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정책에 반영한다. 어렸을 때부터 일상 속에서 정치를 학습하고 실제로 참여하며 키운 시민역량이 핀란드 정치를 젊고 풍요롭게 하는 자양분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8살에게 투표권도 주지 않는다. 18세가 선거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나라는 OECD에서 우리가 유일하다. 보수정당과 한국교총 등은 “대학입시를 앞두고 학업에 전념해야 할 고3 교실이 정치장으로 변질된다”며 반대한다. 그러나 고등학생이 선거권을 갖는 나라는 숱하다. 일본도 만 18세가 되는 고3 학생들이 투표를 하지만 학교가 정치로 혼란을 겪는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 없다. 세계에서 가장 뜨겁고 수준(?)높은 교육을 아이들에게 제공하면서 아이들에 대한 지적 역량은 사정없이 불신해버리는 이율배반의 논리로 입시지옥에만 오로지할 것을 강요하는 꼴이다.

신진기예를 키울 수 없는 척박한 토양만큼이나 정치 시스템도 부실하게 돌아간다. 젊은 인재의 진입장벽은 최대한 높이고, 가까스로 장벽을 넘은 신진들은 공천권과 위계로 내리눌러 애늙은이로 만들어 버린다. 그나마 싹수를 보인 신진 의원들은 잇달아 정치를 포기한다. 얼마 전 불출마를 선언한 한 초선의원은 국회를 좀비에 비유했다. 더 오래 있다가는 그들에게 물려 같은 좀비가 될 수밖에 없겠더라는 말이다. 현실이 이런데도 어느 원로 정치인은 최근 이런 말을 했다. “젊은이들은 좀 더 사회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고 정치에 진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안한 얘기지만 다양한 경력자들(?)이 지금 국회에서 벌이는 난장에서는 노장의 경륜도 관록도 보이지 않는다.

정계를 떠나는 초선들이 내놓은 공통적 처방은 국회 물갈이다. 젊은 인재들을 적극 공천해 국회의 체질을 바꿔야 한다는 주문이다. 이 숙제는 국회의원 44%를 차지하는 386(60년대 태어나 80년대 대학을 다닌 30대) 의원들이 풀어야 한다. 이들은 30대와 40대 때 민주화 투쟁 전력을 훈장으로 달고 대거 국회에 들어와 중추를 형성했다. 자신들은 당시 정치권에 수혈된 젊은 피로 갈채를 받았지만, 그 혜택을 누리기만 했을 뿐 후진을 키우는데는 인색했다. 지금 국회의원 중 40대 미만이 2명뿐이라는 사실이 그들의 안일과 나태를 방증한다. 386 퇴진론이 요구하는 것은 성찰과 희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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