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봉산리 점촌 구석기유적
청주 봉산리 점촌 구석기유적
  • 우종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
  • 승인 2019.12.15 2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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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시선-땅과 사람들
우종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
우종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

 

미호천과 조천(鳥川) 사이의 들판을 지나 첫 번째 마주하는 낮은 구릉(해발 49m)은 본래 모습을 잃은 채 외딴섬처럼 남아 있었다. 오송읍 봉산리 점촌마을이 있던 곳이다. 주변은 오송생명과학단지 조성공사로 지형이 크게 바뀐 모습이다. 파이고 깎인 지층 단면에 암갈색, 황갈색, 적갈색 찰흙층이 널리 분포하고 있음이 눈에 들어온다. 갱신세(新世) 시기에 형성된 고토양층이다. 퇴적층 곳곳에는 깨진 석영조각들이 박혀 있고, 지표면에는 뗀석기가 드러나 있다. 구석기인들이 삶의 흔적을 남긴 땅이 깎이고 파헤쳐지는 과정에 노출된 것이다.

구석기인이 살았던 고토양은 질 좋은 흙으로 벽돌 재료로 쓰인다. 들판에 높이 솟은 벽돌공장의 굴뚝은 주변에 고토양이 분포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표식과도 같다. 야외조사 때 높은 굴뚝을 보면 주변에 구석기유적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음을 직감한다. 오송 만수리 구석기유적도 1990년대 초 벽돌공장에 산더미처럼 쌓아논 찰흙에서 뗀석기를 찾아 구석기유적의 존재를 확인하였다. 이후 2006~2007년 발굴조사를 통해 14개 지점에 걸쳐 전기~후기 구석기시대에 형성된 구석기유적이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중부지역 최대 규모의 구석기유적이다.

봉산리 점촌(店村) 구석기유적은 이들 유적과 이웃하고 있다. 점촌에는 최근까지 운영되었던 2기의 옹기가마가 존재하고, 근현대에 조성되어 폐기된 옹기가마 6기와 폐기장 등이 조사되었다. 오송 옹기점이 자리하였던 곳이다. 이들 옹기가마 아래 퇴적층에서 구석기인이 살았던 흔적이 넓게 확인되었다. 미호천과 조천의 물길로 둘러싸인 완만한 구릉 상에 자리하고, 주변이 트여 있어 조망이 좋아 구석기인들이 삶의 터전으로 삼기에 좋은 입지환경을 갖춘 곳이다.

2016년 8월~2018년 2월 발굴조사한 봉산리 점촌유적은 구석기인들이 남긴 문화의 흔적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땅속에 켜켜이 묻혀 있다. 시기차이를 두고 형성된 6개 유물 층이 확인되었다. 석기형태와 제작기술, 절대연대측정 결과로 볼 때 적어도 7만 년 이전의 중기 구석기시대에 처음으로 점촌에 사람이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하였고, 이후 약 2만 5천~3만 년 전의 후기 구석기시대까지 삶이 지속하였음을 알 수 있다. 석기제작을 위한 돌감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석영(95.6%), 규암(3.5%)을 사용하였다. 이 돌감은 우리나라 구석기시대 사람들이 가장 흔하게 쓴 석기재료이다. 출토된 석기는 모두 3313점이며, 이를 무게로 환산하면 775.2kg이다. 연모를 제작하여 먹거리 확보를 위해 외부에서 사용되었거나 폐기된 것을 감안하면 적어도 1톤 이상의 돌을 외부로부터 옮겨와 석기제작에 사용하였을 것으로 가늠된다. 좋은 돌감 선택, 운반, 석기제작, 사용, 폐기 등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구석기인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완성된 연모는 주먹도끼, 찍게, 주먹대패, 긁개, 밀개 등 325점으로 전체 석기의 9.8%이며, 나머지 2,988점(90.2%)은 석기제작과정에서 생산된 몸돌, 겪지, 망치, 조각 등이다. 이러한 석기구성은 이곳에서 활발한 석기제작행위가 있었으며 비교적 장기간 구석기인들이 거주했음을 의미한다.

봉산리 점촌유적을 중심으로 2㎞ 이내에는 18개 지점의 구석기유적들이 분포한다. 유적의 범위는 8만190㎡이며, 출토된 구석기 유물은 1만8060점이다. 엄청난 규모이다. 미호천을 배경으로 살았던 구석기인들의 중심 생활권이 오송 일원이었음이 고고학 조사로 밝혀졌다. 구석기인들의 활동 무대였던 이곳은 생명과학단지라는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구석기인들의 보금자리였던 점촌 구석기유적 자리에는 오늘날 사람들의 보금자리인 아파트가 건설될 것이다. 공간이 없어졌으니 오랜 역사도 없어졌다. 시간을 뛰어넘어 공간을 공유하고 있을 뿐이다. 그 속에는 구석기인들의 숨결이 깊게 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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