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던 어느 날
그러던 어느 날
  • 배경은 독서논술강사
  • 승인 2019.12.15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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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배경은 독서논술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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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대학생들과 `하버드 행복 수업'을 함께 읽고 행복에 대한 생각을 나눈 시간이 있었다. 가독성이 좋았던 책 이어서 그랬는지 아이들이 제법 행복에 관한 나름의 정의를 세우고 행복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 자기만의 가치관을 만들었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고도 했고, `소확행'이라는 말로 일상의 행복을 찾고 싶다는 친구도 있었다. 성공과 행복을 같이 생각하지 않고 행복을 성공보다 나는 삶이라는 것을 명확히 구분하는 친구도 있었다. 우리는 흔하게 행복을 말하고, 행복을 좇아 살아간다. `행복'의 기운은 어디서 오는 걸까 고민하게 된다.

수상한 그림책을 만났다. 전미화 작가의 『그러던 어느 날』이다. 이런 당황스러운 표지.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를 연상시키는 송충이 눈썹의 여성이 나체로 꼿꼿하게 앉아있다. 세 보이는 인상이다. 좀 특이하다 싶어 열어보니 글자 없는 그림책이다, 이런 그림책은 금방 읽히지만 한번 읽어서는 내용을 이해할 수 없다. 주인공은 배터리 케이지같이 칸막이가 된 사무실에서 퇴근 시간이 지났지만, 상사의 눈치만 보는 흔한 직장여성이다. 지옥철이라고도 불리는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간다. 거리의 사람들도 `오늘'이라는 시간을 산다. 차도에서 싸우기도 하고, 길에는 커플의 다정한 모습도 보인다. 여성은 공사 중인 곳을 지나다 그만 다리에 깁스를 하는 사고를 당한다. 겨드랑이 한쪽에 목발을 끼우고 장바구니를 들고 현관을 들어오다 기어이 달걀 상자를 떨어뜨린다. 가끔 이렇게 재수 없는 날이 있다. 욕을 하고 싶기는 한데 스스로에게 돌아올 욕이기에 참을수 밖에 없다. 간단한 저녁을 만들어 혼밥을 먹는다. TV를 켜니 세상은 모두 즐겁다. 여성은 이런 세상과 단절하듯이 검은 안대를 하고 잠을 청한다. 다음 날, 작은 화분이 배달되어오고 옛 애인이 보낸 카드엔 용서해 달라는 글자와 삐뚤어진 하트뿐이다. 화가 난 여성은 받은 화분을 배란다 구석에 둔다. 그러던 어느 날, 시들어 금방 죽을 것 같은 화분에 물을 준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잎이 살아나고 햇빛을 받은 화분은 통통하게 살이 오른다. 여성은 큰 화분으로 바꿔준다. 그러면서 어딘가에 둔 씨앗을 남은 작은 화분에 심는다. 또 그러던 어느 날, 신비롭게도 작은 화분이 씨앗이 싹을 틔운다. 신이 난 여성은 화초를 모으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집안은 화초로 가득하고 머리맡엔 `식물백과'를 두고 잔다. 안대는 이제 하지 않는다.

여성은 일상의 지침과 헤어짐의 상처를 식물을 기르면서 치유한다. 요즘 정신과에서는 애완동물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위로하는데 좋은 역할을 한다고 들었다. 행복을 위한 여섯 가지 습관 중에도 `타인에게 친절하기'가 있다. 경제적으로 부요해도 행복의 상승곡선은 한계가 있다. 계속 행복하고 싶다면 자원활동과 이타적 삶으로 질 좋은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통계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돌보는 일을 통해, 자신을 돌보는 것이 무엇인지 몸으로 깨달은 여성은 어떻게 살게 될까, 나를 돌보는 일이 다른 사람을 돌보는 일이며 세상을 돌보는 일과도 다르지 않다는 귀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 여성은 식물을 돌보며 진아(眞我)를 찾았다. 집을 둘러보니 오래전에 선물 받은 스투키가 있다. 내게 남은 애정을 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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