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구자경 명예회장 결단 … LG생활건강 `우뚝'
故 구자경 명예회장 결단 … LG생활건강 `우뚝'
  • 이형모 기자
  • 승인 2019.12.15 19: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화장품사업 재진출
럭키 청주공장 건설
창업당시 사업 지속
대전중심 연구개발 총력
1999년 구자경 명예회장이 LG생활건강 청주 치약공장 방문 모습. /LG제공
1999년 구자경 명예회장이 LG생활건강 청주 치약공장 방문 모습. /LG제공

 

지난 14일 숙환으로 별세한 고(故) 구자경 명예회장은 전자·화학을 중심으로 LG그룹 경쟁력을 키웠다.

`기술입국' 신념 아래 현장을 지키며 연구개발에 주력했다. 특히 청주와 대전은 대규모 생활용품 종합공장을 세우고 연구개발 전초기지로 육성했다.

구 명예회장은 LG그룹 창업 초기부터 회사 운영에 합류해 부친인 구인회 창업회장을 도와 회사를 일궜다. 1970년 그룹 회장에 취임할 때까지 20년간 생산현장을 지킨 연유로 한국의 2세 경영인 가운데 구 명예회장만큼 현장을 잘 알고 기술을 잘 이해하는 기업인은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1980년대 초반 늘어나는 제품 수요에 대응하고 전국적 제품 공급을 원활히 하기 위해 한반도의 중간지점인 청주에 치약, 칫솔, 모노륨, 액체 세제 등을 생산하는 생활용품 종합공장인 럭키 청주공장을 건설했다.

또 부친인 구인회 창업회장이 플라스틱 사업에 전념하고자 지난 1954년 완전히 철수했던 화장품 사업으로의 재진출을 결정했다. 당시 청주공장에 국내 최대 규모의 화장품 공장을 건설해 창업 당시의 사업영역이던 화장품 사업을 이어갔다.

LG생활건강 청주공장 관계자는 “당시 고 구자경 회장의 결정이 없었다면 지금의 LG생활건강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 명예회장은 대전을 중심으로 연구개발에 총력을 기울였다.

구 명예회장은 70년대 중반 럭키 울산 공장과 여천 공장에는 공장이 가동되기도 전에 연구실부터 만들었다.

그는 대부분의 연구실이 각 공장별로 소규모 형태로 운영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1976년 국내 민간기업으로는 최초로 금성사에 전사적 차원의 중앙연구소를 설립도록 했다. 이곳에 개발용 컴퓨터, 만능 시험기, 금속 현미경, 고주파 용해로 등 첨단 장비를 설치하고, 국내외 우수 연구진을 초빙하는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투자를 집행했다.

강력하게 추진한 기술 연구개발의 결과로 금성사(LG전자 전신)는 19인치 컬러TV, 공냉식 중앙집중 에어컨, 전자식 VCR, 프로젝션 TV, CD플레이어, 슬림형 냉장고 등 영상미디어와 생활가전 분야에서 수많은 제품을 국내 최초로 개발해 국내 최고의 가전 회사로서 입지를 굳혀 나갔다.

/이형모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