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뒤를 돌아보다
12월, 뒤를 돌아보다
  • 신미선 수필가
  • 승인 2019.12.12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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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신미선 수필가
신미선 수필가

 

어느새 한 해가 그 끝을 향해 내달리고 있다. 하늘의 별들이 모두 땅으로 내려온 듯 거리에는 낮보다 긴 밤을 위해 수십 개의 크리스마스 전구들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엊그제 새해 달력의 첫 장을 넘겨 벽에 걸어놓은 것 같은데 이제 겨우 한 장만이 남아 작은 바람에도 풍랑에 이는 파도처럼 흔들린다. 바야흐로 연말연시의 12월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낡은 일기장을 펼쳐놓고 하루를 돌아보니 생각이 깊다. 한 장 한 장 지난날들엔 그야말로 열두 달 내내 희로애락(喜怒哀)과 오욕칠정(五慾七情)의 온갖 감정들이 고스란히 적혀져 있다.

지난봄에는 하루하루 노환이 깊어가는 아버지를 보러 수시로 친정집을 드나들었다. 한 시간이면 족히 도달할 수 있는 거리인지라 대부분 자가운전으로 오갔지만 그래도 기억에 오래 남는 건 때때로 기차를 탔던 일이다. 객실 창가에 앉아 바라보던 그림 같은 풍경들, 오고 가며 만난 작은 인연들, 그 속에서 느꼈던 자분자분한 감정들을 적은 깨알 같은 메모들은 기차를 타지 않았더라면 도저히 느낄 수 없는 그 순간만의 찰나적 영감들이었다.

하루를 사는 만큼 하루를 잊어가는 엄마는 뒤죽박죽인 생활 속에서도 아버지와 도란도란 작은 텃밭에 상추며 쑥갓이며 토마토 등 온갖 채소들을 길러 자식들을 불러들였다. 더러는 일주일을 직장에서 땀 흘렸으니 하루는 선물하듯 내 집에서 푹 쉬고도 싶었지만 늙어가는 부모님에 대한 연민이 없는 자식은 부모를 쓸쓸하게 한다고 하지 않던가. 여름내 주말마다 드나들며 어우렁더우렁 함께 시간을 보내고 나니 어느새 가을이었다.

아기새가 입을 벌리듯 밤나무의 알밤이 속살을 드러내던 때, 내가 사는 지역의 작은 행사로 가족사진 공모전이 있었다. 나는 언젠가 추석 무렵 코스모스가 흐드러진 친정집 담벼락을 배경으로 찍어 두었던 부모님 사진을 출품했는데 뜻하지 않게 당선이 되었다. 지역 백일장에서도 부모님을 주제로 시를 써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 올가을에도 그렇게 나는 두 분의 덕으로 한층 풍성하게 내 존재를 빛낼 수 있었다. 나의 글제 속에는 언제나 부모님이 계시고, 여전히 그 안에서 벗어나지 못해 자성하던 순간들도 있었지만 부모님은 결국 나의 원천이요 평생을 함께할 그림자 같은 존재다.

지난주에는 세상 모든 문청들의 꿈이라는 신춘문예에 또다시 문을 두드렸다. 횟수로 벌써 세 번째 도전이다. 한 해가 저물어갈 이맘때면 늘 빼놓지 않고 밤을 낮처럼 원고에 집중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시간은 돌아왔으니 우체국에 들러 신문사에 원고를 발송하고 이제는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문청들에게 크리스마스는 연락을 기다리는 날의 중심선이다. 대략 신춘문예 당선 통보가 이날을 전후로 온다고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기다림의 끝이 즐겁고 반가운 한 해로 기억되었으면 좋으련만….

올 한해에도 가속도가 붙었다. 이제라도 낡은 일기장에 남아있는 낱장의 무게만큼 올해를 잘 마무리를 해 볼 참이다. 그동안 나에게 부족했던 것은 무엇인가. 타인을 의식하고 인정받으려 애쓰지는 않았는가, 뒤돌아본다. 12월은 한 해가 끝을 맺는 마지막의 시간이지만 오류를 수정할 수 있는 기회의 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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