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지다
꽃, 지다
  • 이재정 수필가
  • 승인 2019.12.1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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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이재정 수필가
이재정 수필가

 

꽃송이가 `투두둑'떨어졌다. 붉디붉게 막 피어나려는 찰나, 꽃대의 손을 놓아버렸다. 지금은 꽃이 질 때가 아니다. 꽉 붙든 손을 놓기까지 얼마나 주저했을까. 또 어둠의 공포로 떤 시간은 얼마였을지.

오늘, 방송에서 카라 출신의 가수 구하라의 비보를 전한다. 한창 필 나이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그녀다. 가슴이 알싸하다. 필 때나 질 때나 똑같은, 아름다움이 최고조일 때 송이째 떨어지는 꽃. 제 생을 다하여 하롱하롱 지는 법이 없이 통째로 뚝 떨구는 꽃. 애달픈 동백꽃의 낙화를 본다.

꽃잎이 시들지 않은 채 예고도 없이 지는 모습을 춘수락(椿首落)이라 한다. 마치 무사의 목이 잘려 땅에 떨어진다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불의의 사고나 흔히 있을 수 없는 불행한 사건이라는 춘사(椿事)에서 나온 말로 소스라치게 놀랄 일을 이름이다.

얼마 전에 자살한 에프엑스 출신의 설리나 샤이니 멤버인 종현도 막 피어나는 꽃들이었다. 이십대에 피어보지도 못한 그들을 극으로 몰고 간 질풍(疾風)을 짚어본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뱉어낸 말들로 마구 쏟아낸 악성댓글이 원인이 된 셈이다. 언어폭력이 흔들바람을 휘몰고 왔다.

구타로 상처를 준 것만이 폭행은 아니다. 어쩌면 더 큰 상처로 남아 오래 아플 수도 있다. 몸에 난 생채기는 치료를 받으면 낫지만 마음은 시간으로도 치유가 되지 않기도 한다. 이들이 세상을 등지고 총총 떠난 이유다. 끝내 죽음으로 내몬 소리 없는 총이 되었다.

종종 수없이 들려오는 젊은이들의 자살은 춘수락을 떠올린다. 잦은 슬픈 소식은 포도나무의 꽃떨이 현상을 생각하게 한다. 이 현상은 개화 전후나 수정 후에 꽃송이가 한꺼번에 떨어진다. 일교차에 따른 온도변화의 영향이다. 특히 저온으로 인해 광합성이 부족한 상태에서 물을 많이 주거나 강우로 인해 질소 흡수가 왕성해지면 나무가 웃자라게 된다. 그러면 꽃으로 이동할 양분이 모자라게 되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상태를 예방하려면 저온 시 스프링클러로 물을 충분히 주고 바람막이 시설로 보온관리가 필요하다. 꽃이 피는 시기엔 아침마다 꽃송이에 맺힌 이슬을 털어주어야 꽃부리가 벗겨져 수정이 잘 된다. 고온의 건조한 바람은 꽃의 수술을 말라 죽게 하므로 그늘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이렇듯 나무도 열매를 맺기까지 정성을 들여야 하건만 사람인들 오죽하랴. 건강한 한 어른으로 성장하기까지는 가없는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 이토록 허청대고 휘두르는 폭력을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 정작 자신이 내뱉는 말의 무게를 모르는 죄인을, 한 사람의 인생을 궁지로 몰아넣는 폭군을 심판대에 세워 죄를 물어야 할 일이다. 남의 일이라고 침묵하는 것은 방관이다.

이대로 사위는 꽃들을 모른척하는 사이에 꽃떨이는 점점 더 심해져 가고 있다. 어찌, 사람이 준 상처로 곪아 꽃도 피지도 못한 채 꽃망울이 떨어지는 모습을 그냥 지켜보고만 있는가. 무심한 동안 막 맺히기 시작한 꽃들의 애타는 신음소리가 쉼 없이 들려올 것이다.

시시로 봄을 시샘하는 꽃샘바람이 불어온다. 그들을 향하여 세차게 달려든다. 이제 모두는 아슬아슬 지켜보고 있으면 안 된다. 청춘들에게 봄이 오기 전이 가장 추운 법임을 일러주어, 이 바람을 잘 견뎌내도록 한기에 떨고 있는 손을 잡아 주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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