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하루
그날의 하루
  • 김경수 시조시인
  • 승인 2019.12.10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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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경수 시조시인
김경수 시조시인

 

그날 건식은 하루가 그렇게 우습게 꼬일 줄은 몰랐다. 어찌 보면 혹을 떼려다 혹을 붙인 꼴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날 아침이 밝았다. 그날 하루도 백수에겐 할 일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밖이 궁금했다. 무작정 집을 나섰다. 얼마 지나 늘 하루를 쳇바퀴 돌 듯 떠돌다 가는 상가 거리에 고개를 내밀었다.

그때 양복을 입은 한석을 보는 순간 오늘이 바로 지인의 아들 결혼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을 깜빡하고 있었다. 우선 당장 축의금이 필요했다. 혹시나 주머니를 뒤져 보았지만 돈 한 푼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건식에게 돈을 빌려 줄 사람은 흔치 않았다. 나름대로 사정이 있었겠지만 건식은 돈을 빌려가고 난 후 뒷말들이 들리곤 하였다.

그럼에도 어렵게 빚을 지면서 축의금을 마련하려고 하였다. 거기엔 비록 무리가 따랐지만 아무리 백수라고 해도 평소 그 사람에 대한 고마움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우선 가까운 분식집으로 가 사정을 해 보았다.

그들 눈에는 건식을 바쁜 시간에 일을 방해하는 장애물로 취급하는 듯했다. 발을 옮겨 이번엔 옷가게를 찾아갔다. 건식에게 돌아온 대답은 한마디로 빚진 돈이나 갚으라는 것이었다. 건식은 돈을 구하는 일이 막막하였다. 마지막으로 문을 두드린 곳은 식료품가게였다.

건식은 웬만하면 이곳에서 돈을 빌리지 않으려고 했다. 그만큼 돈에 대해 지독하고 절대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에게 사정해 보기로 하였다. 그에게 조건이 있었다. 그는 건식에게 돈을 빌려주는 대신 가게를 봐 달라는 것이었다.

건식은 펄쩍 뛰며 거절했으나 꼭 참석해야 할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렇게라도 축의금으로 참석을 대신 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그날 백수의 운명 같았다. 건식이 원했던 것은 지인과 인사를 나누며 체면도 세우고 맛있는 음식과 이야기를 즐기며 하루를 보내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식료품 가게 주인 또한 예식장에는 가야겠는데 가게 문을 닫고 갈 수도 없었고 마냥 열어 놓을 수도 없었던 차에 건식의 만남은 그에게 적절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가 가고 난 뒤 잠깐 한가로운 듯 보였다. 그런데 얼마 있어 손님들이 밀어닥치고 주변에서 주문이 쇄도하였다. 배달을 미루고 나면 다시 전화가 빗발쳤다. 차마 대충 넘어갈 수가 없었다.

그가 왜 문을 잠시 닫지 못하고 전전긍긍했는지 알 것 같았다. 정신없이 손님들을 대하고 배달을 마치고 나니 그가 어느새 곁에서 빙그레 웃고 있었다. 건식은 왠지 속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갑자기 화가 불끈 솟았지만 그렇다고 달라질 것은 없었다. 스스로 못난 열등의식만 들어낼 뿐이었다. 건식에게 그날은 바쁜 하루였다.

지금 주변에 많은 실업자를 보곤 한다. 그런 그들에게 많은 것이 고통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 고통 또한 다양하겠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돈과 시간은 그들에게 많은 부담감을 안겨줄 수 있다고 본다. 누구에게는 시간이 천금처럼 느껴지겠지만, 누구에게는 지루하고 따분하게 보내야만 하는 하루하루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돈은 삶을 영위해가는 필수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무엇이 그들의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을지 모두에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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