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왕국2' 세 가지 이야기
`겨울왕국2' 세 가지 이야기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9.12.10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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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11월 21일 개봉된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2> 관객이 천만을 돌파했다. 전편보다 빠른 집객 속도라는데, 담긴 속내가 심상치 않다.

#1. <겨울왕국2>는 제국주의적 영화이다.

나를 비롯해 이미 천만 명을 넘겨 본 영화이므로 굳이 스포일러에 대한 우려는 거두겠다. 소녀티를 아직 지우지 못한 엘사와 안나 두 왕족 여성이 주인공인 설정은 변할 수 없다. 달라진 것은 조력자 크리스토프의 역할이 크게 두드러지지 않다는 것. 이 때문에 겉으로는 고난을 극복하는 여성상이 강조되고 있음을 자랑한다.

안개가 가득해 햇빛을 볼 수 없는 숲에서 들리는 의문의 소리는 자연환경 훼손에 대한 경고이자 아렌델 왕국의 위협으로 인식된다. 그 원인은 엘사와 안나의 할아버지가 물길을 막고 세운 인공 댐 때문이라는 설정은 동화를 기반으로 하는 애니메이션 고유의 선한 공식을 관통한다. 그런데 고난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엘사는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신통력을 발휘하고 안나는 동굴을 통과하면서 고난과 상실을 극복하는 인간적이며 동화적 캐릭터로 그려진다.

<겨울왕국2>는 과거 아렌델 왕국의 침략과 전쟁, 그리고 환경을 위협하는 인공 댐에 대한 반성을 표면적 메시지로 삼는다. 인공 댐은 용감한 두 여성 왕족에 의해 제거되고, 아렌델 왕국으로 덮쳐오는 거대한 물 폭탄은 마법의 얼음벽으로 막아낸다.

다시 평화를 찾은 아렌델 왕국. 여기까지가 <겨울왕국2>의 해피엔딩이다. 그런데 마무리가 이상하다. 마법의 숲에는 노불드라라는 유목 원주민이 살고 있었고, 엘사는 뜬금없이 아렌델 왕국을 동생인 안나에게 물려준 뒤 `정령'이 되어 노불드라로 떠난다. 사실상 노불드라를 지배하는 것인데, 인공 댐이라는 개발독재와 마법적 초능력, 그리고 문명을 통해 원주민에 대한 침략의 오랜 야욕을 완성시키는 제국주의의 속내와 별반 다를 게 없다. 다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와 미셀 투르니에의 소설<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이 교차되는 씁쓸함으로 극장 문을 나섰다. 자연에 대한 서구 식민주의 문명의 승리(로빈슨 크루소)와 이를 뒤집어 원래 것에 새로운 가치 부여(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에 대한 갈등이 <겨울왕국2>를 통해 되살아난다.

#2. <겨울왕국2>, 실종된 문화 다양성

애니메이션 왕국답게 디즈니 작품은 일단 개봉만으로도 한 수 접고 들어가게 된다. 여러 가지 조건으로 고려해 개봉 날짜를 맞추고도 물량 공세를 퍼붓는다. <겨울왕국2>는 한국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로 개봉 17일 만인 지난 주말 누적 관객 수 1천만 명을 돌파했다. 2014년 열풍을 몰고 왔던 전편 <겨울왕국>의 1천만 2577명의 기록을 이미 넘어선 것은 물론 그 기록 달성에 걸린 속도 또한 전편보다 빠르다. <겨울왕국2>가 이런 관객의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뜻밖이다. 주제음악 OST도 전편의 에 비해 인상적이지 않고, 이야기전개 또한 서사적 갈등 구조가 허약하다.

<겨울왕국2>는 국내 개봉 첫날 전국의 2,343개 스크린에서 1만2,998회 상영되었다. 스크린 점유율이 39.7%, 상영 점유율은 무려 63%에 달한다. 스크린의 독과점이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특정영화의 스크린 독과점은 영화의 문화다양성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겨울왕국2>를 피해야 하고, 2등 전략을 세워야 하는 영화계의 현실이 처량하다. 올해 천만 관객을 넘긴 국내 개봉 영화는 모두 다섯 편인데 200만 이상 영화는 25편으로 지난해 34편에 비해 크게 줄었다. 영화에 대한 편식은 누구와 무엇 때문인가.

#3. 노키즈존, 함부로 지배하려는 어른들 세상

<겨울왕국2>가 선풍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느닷없이 <노키즈존>에 대한 논란이 생겼다. 어린이들이나 보는 것이라는 편견이 개선되면서 어른들도 애니메이션에 몰입할 수 있음은 고무적이다. 그렇다고 어린이들을 격리해서 영화를 보겠다는 심술의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관람문화에 대한 교육은 필요하다. 그렇다고 편 가르기를 하겠다고 대드는 건 전혀 동화적이고 인간적이지 않다. 바야흐로 눈 내리는 겨울왕국 대신 미세먼지의 겨울이 기승을 부리는 계절. 정작 사람들의 고민은 갈수록 얕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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