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길목에서
겨울 길목에서
  • 임현택 수필가
  • 승인 2019.12.09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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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임현택 수필가
임현택 수필가

 

창밖엔 겨울이 왔음에도 가을을 붙잡고 있는 느티나무분재. 사시나무 떨듯 흔들어대는 잔가지에 몇 개 남지 않은 이파리가 애처롭게 매달려 있는 가로수. 간밤에 내린 무서리로 고운 빛깔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검으직직하게 오체투지가 된 낙엽들이 축축하게 널브러져 있다. 그럼에도, 거실 창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여전히 연녹색이파리를 위풍당당하게 매단 느티나무분재. 짙푸른 빛깔이 조금 연해졌을 뿐 지난해와 달리 오래도록 이파리를 매달고 있다.

어림잡아 칠십 년을 넘은 느티나무분재, 마치 삿갓을 닮은 정이품 소나무모양으로 밑둥치가 굵직하니 자태도 일품이다. 비발디 의`사계'를 감상하는 것처럼 계절마다 운치가 있다. 비발디는 아늑한 봄을, 타는 듯한 여름을 지나 가을의 수확을 기쁨으로 묘사하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겨울을 구상했듯 매년 봄이면 난 분재 앞에 설렘과 조급함이 공존한다. 혹여나 겨우내 어떻게 되지나 않았을까 조바심을 내며 오며 가며 잔가지를 유심히 살핀다. 자연을 만끽해야 할 나무가 자그마한 화분 속에 수십 년을 살았으니 봄이 되기까지 염려로 새순을 갈망한다.

몇 해 전 여름, 병원 입원으로 한참을 돌보지 못했다. 퇴원을 하니 그 푸르던 이파리는 온데간데없고 물을 주지 않아 고사 직전의 느티나무분재. 반 이상의 이파리가 된서리를 맞아 단풍이 들기 전에 말라비틀어지듯 쪼글쪼글 바싹 말라 손끝만 대도 서럽다는 듯 우수수 떨어졌다. 그나마 남아있는 이파리도 짙푸르던 빛깔이 누렇게 단풍 아닌 단풍이 들어 겨우겨우 연명하듯 축 늘어트리고 있었다. 식구들의 무관심으로 무심하게 보낸 시간 속에 느티나무는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치며 무관심에 죽어가고 있었던 거다.

사람나이로 칠순, 하늘의 뜻도 알고 눈을 감아도 세상을 볼 수 있는 세월을 옹골차게 지냈는데 무너질까 덜컥 겁이 났다. 애지중지 동고동락하며 동행했건만 허무하게 보낼 수 없었다. 이사할 때면 신줏단지 모시듯 자동차로 운반했고 한곳에 자리 잡으면 옮기지도 않았다. 행여 자리 옮김으로 스트레스받을까 봐 노심초사했는데. 마음이 바쁘다. 창문엔 대나무발로 그늘을 만들고 장맛비처럼 이파리마다 흠뻑 물을 주고 영양제도 꽂아 주었다. 늘어진 이파리가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기를 바라면서. 사랑이 넘치면 그 사랑 때문에 아프다 했는데 무관심은 더 아픈 상처를 안겼다.

만남은 인연일까 필연일까. 인연을 두고 불가에서 인(因)과 연(緣)을 함께 부른다. 느티나무분재와의 만남은 아무리 곱씹어 봐도 필연인 듯하다. 인생은 마라톤이라 했는데 신혼 초부터 거실 한편에서 나와 마라톤 경주를 시작했다. 백세시대 반환점을 돌아오는 길목, 예기치 않게 병원 입원을 하는 바람에 분재가 고사 직전까지 가 있었던 거다. 본시 마라톤은 장거리레이스 고독한 경기다. 반환점을 돌아설 때면 다리에 힘이 빠져 무겁게 가라앉은 몸을 끌고 달리려면 포기하고 싶고 주저앉고 싶다. 뿐인가 승부로 인해 불안감은 물론 우울감에도 빠진다. 마치 삶의 성공전략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인생그래프처럼.

반환점, 반환점은 꿈을 펼치는 인생라이프 곡선 중 최고의 정점을 찍는 시점. 화려한 삶이 끝없이 이어지는 매듭, 숨 가쁘게 살아온 나날 어찌나 세월이 빠른지 인생은 마라톤인 줄 알았는데, 아이러니하게 마라톤보다 전력질주를 요하는 100M 달리기 같다. 반환점에 서보니 인생무상이라고 느티나무분재도 나도 전력질주를 하면서 달려가는 시간을 잡아보고 싶은 거다. 그래서 안간힘을 쓰며 이파리를 붙잡고 있는 느티나무분재. 흩어지는 계절, 어쩜 바깥풍경을 보면서 자연을 그리워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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