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한 차별주의자
선량한 차별주의자
  • 정선옥 금왕교육도서관장
  • 승인 2019.12.09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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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말하는 행복한 책읽기
정선옥 금왕교육도서관장
정선옥 금왕교육도서관장

 

우리 집에서 나를 제외한 세 명의 혈액형은 A형이다. 엄마를 배려하는 마음인지 외식할 때, 여행지를 선택할 때 세 사람의 반응은 `아무거나'이다. 양자택일을 해야 할 상황에서도 같은 반응이다. 성격이 급한 나는 아이들에게 결정 장애라는 말을 자주 썼다.

도서 `선량한 차별주의자(김지혜 저·창비)'에는 “무언가에 장애를 붙이는 건 부족함, 열등감을 의미하고, 그런 관념 속에서 장애인은 늘 부족하고 열등한 존재로 여겨진다.”라고 말한다. 일상에서 습관적으로 쓰는 용어인데 장애인에 대한 차별일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저자는 대학교 다문화학과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이주민, 성소수자, 아동·청소년, 장애인 등 소수자의 인권, 차별에 대해 연구했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혐오와 차별의 순간들을 들려준다.

우리 도서관에는 청소를 도와주는 행복나눔실무원이 계신다. 신규 직원은 그분에게 여사님이라는 호칭을 썼다. 존중의 의미겠지만 40대 중반의 젊은 분이고, 나는 여사님이라는 호칭에 반감이 있어 주사님으로 정리했다. 물론 주무관이 공식 호칭이지만 왠지 낯설다. 책에서도 우리가 흔히 실수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에 따라 달라지는 호칭 문제, 특히 여사님의 호칭에 대해 이야기한다. 수원시 여성센터는 여사님이라는 호칭이 비정규직을 낮추어 부르는 말로 불합리한 차별이라고 판단했다.

단순한 인간의 보편성은 다양성과 만나면서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

화장실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화장실은 장애인 화장실을 포함해 남, 여로 구분해 사용한다. 전혀 생각해 본 적 없는 성 소수자인 트렌스젠더를 위한 화장실은 어떨까? 유럽에는 이미 `모든 젠더 화장실'설치가 증가하는 추세라고 한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보편성과 다양성을 모두 충족시키는 대안은 필요하다.

외국인에 대한 차별도 다룬다. 내가 근무하는 지역인 금왕, 대소에는 동남아시아계의 외국인이 많다. 그들은 주로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다닌다. 저녁에 걸어갈 때면 무심코 옷깃을 여미게 된다. 구조화된 차별 속에서 차별을 인지하지 못한 그릇된 편견이다.

차별은 누군가에게 인종이나 피부색을 이유로 그를 공공의 구성원으로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할 때, 그가 당연히 느낄 모멸감, 좌절감, 수치심의 문제이다. 바로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문제다.

나도 좁은 시야에 갇힌 채 무의식적으로 사회질서를 따라가며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되었다. 이미 익숙해진 질서에서 불평등을 감지하고 한걸음 내딛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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