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의 변신 만두
배추의 변신 만두
  • 류충옥 수필가·청주성화초 행정실장
  • 승인 2019.12.08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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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류충옥 수필가·청주성화초 행정실장
류충옥 수필가·청주성화초 행정실장

 

김장을 하니 새로 만든 김치가 김치냉장고의 주인 자리를 턱 하니 차고앉았다. 기존에 있던 묵은 김치는 자리를 내주고는 소박맞은 여인네처럼 자리를 잡지 못한다. 이럴 때 묵은 김치를 맛있는 음식으로 변신시키는 것이 겨울철 별미, 만두이다. 우리 집은 겨울이면 한차례 이상 만두를 만들어 먹는다.

남편이 어려서부터 만두를 좋아하여서 어머니는 한 해 겨울에 일곱 번이나 만두를 만들어 먹이셨다. 식혜와 함께 먹는 집만두 맛은 최고의 합작품이다. 만두를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김치 한 통을 칼로 잘게 다져서 국물은 꼭 짜내고, 돼지고기를 맛있게 볶아서 역시 국물을 짜서 넣고, 두부도 국물을 짜서 넣고 소금에 삭힌 지고추도 다져서 국물을 짜내고 넣는다. 만두는 손이 많이 가고 힘든 과정을 거치기에 우리 집은 만두소를 남편이 주로 만든다.

어릴 적 만두를 만들 때면 밀가루 반죽을 홍두깨로 얇게 펴서 주전자 뚜껑으로 동그랗게 잘라 만두피를 만들었다. 만두 만드는 일을 거들다가 지겨울 때면 동그랗게 잘라내고 남은 만두피를 뭉쳐서 찰흙 놀이처럼 이것저것 만들기를 하며 지루한 시간을 달래곤 하였다. 충청도는 설날에 만두를 만드는 일이 필수였기에 집마다 만두를 만드는 일이 흔했다.

이웃집 부부와 함께 만두를 만들었다. 작년엔 남편이 혼자서 만들었는데 온종일 걸려서 도 닦는 심정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올해는 넷이서 함께 만드니 한나절 만에 금방 끝났다. 혼자 만들 때는 지루하고 오래 걸리지만 넷이 만드니 웃고 떠드는 사이에 금방 만들 수 있었다.

만두소를 만두피에 넣고 속이 빠져나오지 않도록 꼭 오므려서 뜨겁게 쪄내니 따끈따끈 만두가 입에 달라붙는다. 다양한 재료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만두라는 음식으로 태어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기에 더욱 풍부한 맛이 살아 있는 것 같다. 사람도 각 개인이 여럿이 모여 어우러질 때 시너지를 발휘하여 더 많은 실적을 만들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가끔 요리는 마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원래의 식자재가 요리과정을 거치면서 새로운 모양과 맛으로 변신하기 때문이다. 푸릇푸릇한 배추를 소금에 절이고 양념을 묻혀서 김치를 만드는 것이 1차 변신이었고, 김치를 잘게 썰어서 만두를 만드는 것이 2차 변신이었다. 배추가 만두가 되기까지의 오랜 시간과 여정은 쉽지 않았으리라.

사람이 태어나서 부모의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하다가 결혼을 하여 부모가 되고 또 노인으로 변해가는 삶의 여정 또한 숱한 변신을 거듭하며 변해간다. 그러나 배추가 만두가 되기까지 모습은 변해도 배추의 본질은 가지고 있는 것처럼, 내가 지켜야 할 나의 본질은 무엇일까?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상황에 따라 나의 모습은 다양하게 나타나고 보일 것이다. 그러나 보이는 모습에 연연하지 않고, 나의 잣대를 정의로움과 선함에 둔다면 나의 본질이 흔들리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 같다. 바람이 차다. 오늘은 시골 아버지께 만둣국을 끓여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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