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개혁은 뒷전인가
민생개혁은 뒷전인가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9.12.08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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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지난 2016년 5월 서울 지하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작업울 하던 19세 청년이 전동열차에 끼여 숨졌다. 2인 1조로 수행해야 할 작업을 홀로 하다 보니 위기상황에서 도움을 받지 못했다. 월급 140만원의 비정규직 수리공의 가방에서는 점심으로 먹을 컵라면이 나왔다. 국민적 분노가 일자 국회는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등 파견 근로자들의 근로환경을 개선하는 법안들을 발의했다. 그러나 법안들은 업주의 부담이 과도하다는 반론에 밀려 먼지만 뒤집어썼다.

2년 반이 지난 지난해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야간 근무를 하던 24살 청년 김용균씨가 숨졌다. 석탄 운반시설에서 떨어진 낙탄을 제거하다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목숨을 잃었다. 그 역시 2명이 필요한 작업을 깜깜한 어둠 속에서 홀로 하다가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죽어갔다. 다시 구의역 사고의 재판이라는 공분이 터졌다. 그동안 정부와 국회는 무엇을 했느냐는 질타가 쏟아지자 국회는 부랴부랴 법안 처리에 착수해 `산업안전보건법'을 통과시켰다. 기업의 부담을 걱정하다가 새로운 죽음을 마주하고 나서야 마지못해 내딛은 한걸음이었다.

다시 1년이 흘렀다. 어제 고 김용균씨 1주기 추도식이 그가 잠든 공원묘지에서 열렸다. 그의 1주기는 비정규직이 일하는 산업현장에서 그동안 달라진 게 거의 없다는 사실을 곱씹어야 하는 허망한 시간이 되고 있다.

정부는 김씨 사망 후 2022년까지 산재사망자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공언하며 대책을 약속했다. 정부가 출범한 특별조사위는 김씨 사고의 원인이 `위험의 외주화'와 `다단계 하도급'이라는 구조적 문제라고 결론 내렸다. 특조위에 참여한 한 변호사의 발언은 사고의 실체를 이렇게 압축했다. “권한과 이윤은 위로 올라가 쌓였고, 책임과 위험은 아래로 내려와 하청 노동자들의 몸뚱아리에 전가됐다”. 특조위는 `노동자 직접고용 정규직화'등 22개 권고안을 정부에 전했다. 그러나 권고안은 한 특조위원의 말처럼 `휴지통에 내던져졌다'. 5개를 제외한 대부분이 한치의 진전도 못 하고 있다. 김씨가 참변을 당한 발전소 작업장도 방진용 마스크 지급 외에는 달라진 게 없다고 한다.

아직도 하루 평균 3명 이상의 노동자가 현장에서 재해로 목숨을 잃는다는 통계는 산재사망을 반감하겠다는 정부의 약속을 비웃는다. 며칠 전 김씨 추모대회에서 생전의 김씨와 일했던 동료는 말했다. “우리가 일하는 곳은 여전히 깜깜하다. 우리의 안전과 미래도 깜깜하다. 우리는 용균이 너처럼 일터에서 죽어가는 노동자의 소식을 매일 듣는다”.

검찰을 개혁하자는 데 토를 달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조국 사태에 이어 유재수 감찰 중단과 하명수사 의혹을 놓고 검찰과 공방을 벌이는 청와대의 모습에서 민생개혁은 뒷전으로 밀린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고래고기까지 등장한 잡다한 의혹들에 대한 해명과 반박에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면서 신뢰를 잃어간다는 소리도 들린다. 검찰개혁에 쏟아붓는 에너지를 민생개혁으로 돌려야 할 때가 됐다.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은 세계 최저다. 올해 부끄러운 이 기록이 경신될 전망이다. 가임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자녀가 0.88명에 그칠 것이라고 한다. 인구 유지에 필요한 최저치가 2.1명임을 감안하면 국가존립이 걸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로부터는 진지한 고민도 솔깃한 대책도 들리지 않는다. 추락하는 출산율은 일터에서 하루 3명이 죽어서 돌아오는 가혹한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죽음의 숫자가 너무 많으니까 죽음은 무의미한 통계숫자처럼 일상화되어서 아무런 충격이나 반성의 자료가 되지 못하고 .... 이 사회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작가 김훈의 절망에 정부는 어떻게 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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