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흐마니노프’와 뽕끼
`라흐마니노프’와 뽕끼
  • 강석범 진천 이월중 교감
  • 승인 2019.12.04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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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강석범 진천 이월중 교감
강석범 진천 이월중 교감

 

라흐마니노프(Sergey Vasilyevich Rachmaninoff·1873~1943)는 러시아의 대표적인 피아니스트이며 작곡자로, 피아노곡에 걸작이 많은 20세기 전반기의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 가운데 한 명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는 차이콥스키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평가를 받고 있는데, 실제 라흐마니노프는 차이콥스키에게 배웠으며 그를 멘토로 삼았다고 합니다. 특히 그의 피아노곡 프렐류드(PreIude)`Op.23, No.5'는 연주자들 사이에 널리 알려진 유명한 곡입니다. 그런데 이 곡 전주 부분이 들으면 들을수록 아주 재미있는 요소가 있습니다.

어느 날 아들 녀석의 방으로부터 들려오는 클래식 피아노곡이, 소위 얘기하는 `뽕끼'(트로트를 속되게 이르는 말로 한국의 대중가요 관련 속어)가 멋들어지게 들어간 음악으로 다가왔습니다. `이건 뭐지?'얼른 들어가 아이의 연주를 흥미롭게 지켜봤습니다. 프렐류드는 전체적으로 한 연주곡에 다양한 레퍼토리를 가득 담아놓은 종합선물세트 같은 진행이 독특했습니다.

`탁 트인 길을 씩씩하게 나아가듯, 피아노 터치가 힘차고 박력 있게 이어지다가, 산 넘고 바다 건너 잔잔한 호수에 이르면, 부드러운 감성에 이끌려 한없이 여유로운 선율로 변합니다. 때론 따듯한 햇볕 아래 아무 생각 없이 벌러덩 드러눕기도 하고, 무념무상의 시냇물처럼 졸졸졸 무리지어 흘러가기도 합니다. 시냇물이 강물 되어 다시 자신의 길을 찾아 나설 때쯤, 피아노 소리는 다시 휴식을 박차고 힘차게 전진합니다. 마치 아껴둔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처럼…' 프렐류드는 정말 멋진 곡입니다. 어찌 보면 웅장한 이야기를 기승전결에 맞게 써내려간 곡이라고 할까? 이런 대단한 명곡의 전주 부분이 재밌게도 `뽕끼'를 퐁퐁 풍기며 비교적 단조롭게 반복됩니다.

`쿵 짜라라 짠짠 쿵짜라~', `쿵 짜라라 짠짠 쿵짜라~', 하하하 내 귀에는 영락없는 뽕짝의 전형적인 박자로 들립니다.

보통 트로트는 2박 계열의 박자를 반복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에`쿵짝',`뽕짝'으로 들리기도 하고, 도레미솔라의 단조 5음계를 사용하는 특징과, 박자에서 오는 특유의 느낌 때문에 전주만 듣고도 토르트 스럽다는 뽕끼를 느끼게 됩니다. 물론 라흐마니노프의 프렐류드 전주에서 뽕끼를 찾아내 우스꽝스럽게 해석한 것이 지극히 개인적 취향일 수도 있겠지만, 곡의 진행을 분석해보면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 곡의 전주 부분은 기본적으로 솔시레 3음만을 사용해 단순한 리듬으로 반복됩니다. 음폭이 크지 않은 3음을 사용했음에도 지루하지 않고 경쾌하게 다가옵니다. 마치 신나는 트로트 곡처럼 말입니다. 나는 아들의 흥미로운 연주에 맞춰 나훈아의 `건배'란 곡을 멋들어지게 불러봅니다. `자네도 빈손~, 나 또한 빈손~, 돌고 또 도는 세상 탓은 말어라~' 딱 들어맞지는 않지만, 아이도 어느덧 내 노래 장단에 반주를 넣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둘이서 한바탕 웃어봅니다.

“아빠~ 진짜 노래가 되네요?” 하하하~. 연주공부에 방해가 될까 봐 더 머무르지 않고 방을 나왔지만, 20세기 명장의 피아노곡이, 내 귀에는 계속 뽕끼를 가득 담은, 멋진 트로트 명곡으로 귓가에 윙윙거렸습니다. 마치 중독성 있는 멜로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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