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겨울이 따뜻한 이유
그래도 겨울이 따뜻한 이유
  • 김금란 기자
  • 승인 2019.12.03 2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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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김금란 부국장
김금란 부국장

 

연탄 한 장으로도 행복했던 시절이 있다.

이불을 뒤집어써도 황소바람은 들어왔고 인기척 소리에 깨어나면 달빛 사이로 어머니는 슬쩍 방문 열고 나갔다가 들어오셨다. 얼마 지나자 얼었던 몸은 방바닥을 타고 들어오는 온기에 녹았다. 연탄불을 갈고 들어온 어머니의 마음은 연탄 한 장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젠 먹고 살만해졌고 배가 두둑해졌지만, 그 시절 온기는 고향을 떠나온 이들에겐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팍팍한 삶을 견디는 힘이 되었다.

고릿적 이야기로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요즘도 소비자가격으로 800원인 연탄 한 장이 필요한 이웃은 우리 주변엔 많다.

가난도 겪어본 사람은 알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내 배가 부르면 남의 주린 배는 보이지 않는 법이니까.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심기준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국세청으로부터 받은 `2018 고액상습체납자 개인 공개자 명단'자료를 분석한 결과 전국 고액 상습체납자 100명이 5917억원의 세금을 체납했다. 1인당 계산하면 평균 59억1800만원을 내지 않았다.

고액 상습체납자 상위 100명 중 충북에 주소를 둔 2명은 각 42억4400만원, 41억2800만원 총 83억7200만원을 체납했다. 체납액 전국 1위는 광주 거주자로 249억8700만원의 세금을 내지 않았고 이어 서울 거주자가 180억7000만원을 체납해 체납액 2위에 이름을 올렸다.

심 의원은 “체납 국세 증가는 성실 납세자와의 형평성 문제뿐 아니라 세수 수입 문제로 경제적 손실을 가져올 수 있다”며 “체납자들의 은닉 재산 추적조사 강화가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액체납자 1명이 내지 않은 세금은 연탄 739만 3500장을 구입할 수 있는 금액이다. 이 연탄을 한 가구에 1000장씩 나눠준다면 7397가구가 겨울을 날 수 있다.

최근엔 추위에 아랑곳없이 청주에선 미분양 아파트 미계약분을 선착순으로 모집하자 밤샘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1번 번호표를 받은 사람이 1800만원에 번호표를 팔았다는 글이 부동산카페에 올라오기도 했다. 이런 일이 벌어진 배경은 아파트 매입 자금 출처를 소명해야 하는 서울과 달리 미분양지역인 청주는 이런 제약이 없어 서울이나 수도권, 대전 투자자들이 몰렸기 때문이다.

있어도 걱정, 없어도 걱정인 돈. 그래도 이맘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얼굴없는 천사들 덕분에 돈의 가치는 배가된다.

수원시 장안구청에는 최근 겨울 이불 10채가 택배로 도착했다. 택배상자에는 `올여름 선풍기를 보냈던 사람입니다. 취약계층에 보탬이 되길…'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얼굴없는 천사는 지난여름에는 택배로 선풍기 10대를 기부한 바 있다.

울산 북구에서는 익명의 기부자가 어려운 이웃을 위해 7년째 상품권을 기부하고 있다. 이 천사는 복지담당자에게 1000만원 상당의 농협 상품권이 담긴 검정 비닐봉지를 내밀며 “얼마 되지 않아서 미안하고 부끄럽지만 좋은 곳에 써 달라”고 말한 뒤 자리를 떠났다.

올해도 사랑의 온도탑과 사랑의 연탄 나눔 운동이 시작됐다. 한국 구세군 충북지방본부도 최근 2019 구세군 자선냄비 시종식을 갖고 모금 활동에 들어갔다. 같은 손으로 누구는 권력과 탐욕을 움켜쥐지만 누구는 사랑을 전한다. 얼굴없는 천사들의 손이 있어 올해도 어려운 이웃들의 겨울은 따듯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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