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시장 부인석(婦人席)
천안시장 부인석(婦人席)
  • 이재경 기자
  • 승인 2019.12.02 19: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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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재경 국장(천안)
이재경 국장(천안)

 

한편으론 억울할 수도 있겠다. 자연인 신분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공연을 본 것이 뭔 죄가 되냐고 항변할 만도 하다. 하지만 주인공이 대법원에서 유죄 선고를 받고 시장직을 상실한 사람의 부인이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구본영 전 천안시장의 부인인 정모씨의 얘기다.

정씨는 지난달 27일 천안예술의전당에 나타났다. 11월 14일 구 전 시장이 대법원에서 최종 당선무효형이 확정된 지 13일 만에 `대중'에 모습을 드러냈다. 곁에는 현직 천안시청 간부 공무원들의 배우자들이 함께했다.

이날 그는 천안예술의전당이 제공한 이른바 유보석(留保席)이라는 `비매품'인 VIP석을 덥석 받아 앉았다. 무대 앞에서 다섯 번째 줄 가운데 자리, 최고의 로열석이다. 함께 한 일행들이 있었지만 `아직도 난 시장 부인이야'라고 착각했던 모양이다. 그가 앉은 자리는 지난 5년간 남편인 구씨가 현직 시장으로 있을 동안 그의 전유물이었다. `시장 사모님으로서 자리를 빛내면서 관계자들을 격려하는 공적인 역할을 하시기 때문에'예우 차원에서 항상 정씨가 오면 그 자리를 내줬다는 게 예술의전당 측 설명이다. 하지만 어불성설이다. 유보석은 공연장에서 이중 티켓 발급이나 공연 진행 관련 인사의 배석, 갑작스런 공적(公的) VIP의 출현 등 만약의 상황에 대비한 자리다. 그렇게 사용돼야 할 유보석을 정씨는 지난 5년여 간 아무렇지 않게 버젓이 자신의 전용석으로 차지했다. 예술의전당은 정씨가 표를 구입해 입장했기 때문에 공짜 관람을 한 것은 아니라고 강변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정씨가 자신의 지정 좌석이 아닌 VIP석 급의 유보석으로 바꿔 앉았다면 이는 심각하게 `부적절한'상황이 될 수 있다. 그가 현직 대학교수라는 점에서 `그 자리의 값어치를 따지자면' 김영란법 시비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내년 4·15 보선 이후 누가 천안시장의 부인(또는 남편)이 되더라도 예술의전당에서 유보석을 독점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현행 법규는 대통령의 배우자 말고는 어떤 자치단체장이나 공기관장의 배우자에게 경호를 포함한 `공적인 예우'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사단장 부인이 사단장이 되는'모순된 사회를 막기 위해서다.

이번 정씨의 공연장 해프닝을 보면서 사회지도층의 그릇된 특권 의식에 대해 새삼 곱씹어보게 된다. 시장 사모님은 왜 늘 VIP석에만 앉으려 했을까. 주머니가 넉넉지 않아 10만원 대 1층 VIP석이 아닌 2, 3만원짜리 3층 후미진 관람석에서 공연을 봐야 하는 관객들. 그들과 호흡하고 대화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먼 무대를 내려다보는 평범한 이웃 같은 사모님. 그런 모습의 `내조'가 오히려 정치인인 배우자에게 더 득이 되지 않았을까. 물론 우러나와야 하지만.

정씨는 27일의 해프닝이 있은지 이틀 후 저녁에 또 지기들을 대동하고 같은 공연장에 모습을 나타냈다.(이때는 예술의전당 측이 취재를 의식해 VIP석을 제공하지 않았다) 유니버설 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을 봤다고 한다. 이쯤 되면 요즘 말로 `멘탈갑'이다. 천안시민들은 그의 배우자의 귀책으로 인해 내년 천안시장 보궐선거 비용으로 무려 십 수억원 이상의 세금을 `자부담'해야 하는 상황인데 말이다. 정씨는 구 전 시장의 재임 기간(2014.7~2019.11) 중 왕성한 활동력으로 남편을 보좌했다. 여성계를 다독거리는 일을 뛰어넘어서 시장을 대신한 해외 출장길에 오르고, 시청 인사에도 관여한다는 구설에 오를 정도로 내조에 `열심'이었다. 그렇다면 본인 역시 지금은 더욱 삼가고 자숙해야 할 시기이다. 공무원 부인들을 거느리고 나타난 모양새가 마치 시민을 비웃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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