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댐 수몰지역 발굴과 그 후
충주댐 수몰지역 발굴과 그 후
  • 우종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
  • 승인 2019.12.01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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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시선-땅과 사람들
우종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
우종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내륙호수인 충주댐은 1978년 착공되어 1985년 완공되었다. 저수용량이 많은 만큼 물속에 잠기는 수몰지역도 충주, 제천, 단양에 걸쳐 매우 넓다. 수몰지역 문화유산 지표조사는 1979~1980년 고고·고분분야, 역사분야, 불적분야, 고건축분야, 민속분야, 천연기념물분야 등 6개 학문분야로 나누어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결과 구석기~조선시대에 이르는 많은 살아있는 역사가 매우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음이 확인되어 학계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동안 수몰지역에 포함된 지역에서 이루어진 고고학적 조사는 청동기시대 황석리 고인돌뿐이어서 문화의 특성과 양상을 파악하여 통사적으로 역사발달 과정을 밝힐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기 때문이다.

남한강을 중심으로 발달한 선사문화와 단양 적성비, 중원 고구려비의 발견으로 삼국시대 문화와 영역문제에 관심이 높아가고 있었으며, 고려~조선시대 내륙지방에 형성된 문화에 관하여서도 지방사 관점에서 새로운 해석이 요구되고 있던 때이다. 또한 1981년 충북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중원문화권 유적분포도'가 만들어지면서 중원문화권이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되기 시작하였고, 문화권 설정범위에 대한 논의되기 시작하던 때이다. 이처럼 중원문화(권)에 대한 새로운 학문의 체계화가 필요하던 때에 충주댐 수몰지역 유적발굴(1982~1985년)이 이루어져 큰 주목을 받게 되었다.

발굴조사는 고고분야 31개, 역사분야 10개, 불적분야 6개 유적 등 47개 유적이 조사되었다. 여기에 참가한 조사팀은 당시 전국적으로 고고학 발굴이 가능한 15개 기관의 학자들이 참여하였다. 우리나라에서 단일목적으로 발굴조사단이 조직된 것으로는 최대 규모이다. 이때 조사에 참여한 학생들이 현재는 고고학계 중견학자가 되었으니 학문의 토대가 마련된 것이기도 하다. 충주댐 수몰지역 발굴은 한국고고학계 핵심연구자들을 끌어들인 거대한 학문연구의 장이었던 셈이다.

구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유적·유물들이 오랜 세월 땅속에 묻혀 있다가 고고학자들의 손길을 빌어 그 실체를 드러내었다. 땅속에서 역사를 발굴한 것으로 중원문화의 중심지역에서 밝혀진 역사규명의 중요한 정보들이다. 구석기시대 연모와 짐승화석,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 청동기시대 집터와 무덤, 초기 철기시대 집터, 삼국시대 고분, 통일신라~고려시대 절터, 조선시대 관아·창고·역(驛)·원(院), 토성 등 통사적으로 역사발전과정 및 문화양상을 이해할 수 있는 풍부한 고고학 자료들이 오랜 잠에서 깨어나 세상 밖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충주댐 수몰지역 조사는 이 지역 문화유산 연구에 하나의 획기적인 사건이었고, 중원문화의 특성과 중원문화권 설정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은 여기에서 밝혀진 학술적 성과를 바탕으로 국립충주박물관 건립이 추진되고 있으니 머지않아 중원문화의 실체를 직접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충주댐 수몰지역 발굴조사는 30여 년의 시간이 흘렀어도 늘 마음 한구석은 무겁다. 애정과 열정을 갖고 한 발굴조사였으나 완벽한 조사였다고 장담할 수 없다. 또한, 유적은 조사과정에서 그 원형이 사라질 수밖에 없었고, 결국은 물속에 영원히 잠기기 때문이다. 조사에 좀 더 많은 시간이 주어지고 더 나은 발굴기술과 방법, 풍부한 고고학 지식을 갖고 조사했었더라면 옛사람들이 남겼던 역사정보들을 더 많이 찾아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아무리 조사에 열정을 쏟았다고 해도 이런저런 복잡한 마음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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