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과 겨울 사이
가을과 겨울 사이
  • 김순남 수필가
  • 승인 2019.11.2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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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순남 수필가
김순남 수필가

 

어느새 가을의 끝자락인가. 아니, 이미 겨울의 문턱에 들어섰건만 내심 가을이라 우기고 있는지 모르겠다. 농부들은 못다 한 수확을 마무리하느라 손길이 바쁘고, 조그만 소도시인 우리 지역에도 전시회니, 발표회 등 이런저런 결실을 맺는 행사들이 이어진다. 수능한파에 이어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진 탓에 사람들의 옷차림은 두툼한 외투로 바뀌었다. 날씨가 추워지면 마음이 더욱 바빠진다. 겨울을 맞을 채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리라.

겨울 준비는 자연에서 먼저 느낄 수 있다. 며칠 전만 해도 노랗게 또는 붉게 물든 나뭇잎을 뽐내며 호수에 고운 모습을 드리우고 있었는데 그사이 나무들은 우수수 나뭇잎을 떨구어내고 있다. 계절이 바뀌어 감에 순응하는 자연의 모습에서 숙연한 마음이 든다.

겨울 준비라 하면 김장을 빼놓을 수 없다. 예전에 시골에서는 겨울 동안 반양식 이라 하여 항아리를 여러 개 묻어놓고 눈, 비를 맞지 않도록 움집모양의 김치광을 만들었다. 배추김치, 총각김치, 동치미 등 항아리마다 가득 채워 넣고 어른들은 흐뭇해하셨다. 식구가 많은 우리 집에는 무 잎과 속이 덜 찬 배추, 김장을 하다 포기에서 떨어진 배추 잎들도 버리지 않고 막 김치라 하여 한 항아리 버무려 넣었다. 그 김치로 국도 끓이고 만두 속도 장만하였으며 청국장, 비지장을 끓일 때도 요긴하게 쓰였다.

지금도 주부들에게는 김장이 연중 큰 행사이다. 요즘은 절임배추를 주문해서 양념을 장만해 버무리는 집이 많아졌다. 올해는 유독 여러 번 찾아온 태풍피해로 남녘에 무, 배추 작황이 좋지 않아 값이 폭등했다는 내용이 방송에 연일 오르내린다. 배춧값이 한 포기에 얼마라느니, 김장값은 대충 평년보다 몇 프로 정도 올려 잡아야 한다고 친절하게 짚어준다.

텃밭에 심은 배추가 실하지는 않아도 김장을 시작했다. 심어놓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배추가 아직 크기도전에 잎에 구멍이 숭숭 나있었다. 배추 잎을 들춰보았더니 애벌레 한두 마리씩 포기마다 자리를 잡고 있었다. 처음에는 일일이 벌레를 잡아주기도 했지만, 계속 그럴 여건이 안 되어 방치하다시피 했는데 해충도 이겨내고 태풍도 맞으며 스스로 잘 자라주었다. 속이 덜 찼어도 우리 가족이 먹을 양만큼은 김치 통을 채워주었다.

살림이 빠듯하던 시절 월동준비는 더 힘들었지만 그만큼 뿌듯함도 컸었다. 결혼 초 서투른 솜씨로 김장을 하고 연탄창고에 높다랗게 연탄을 가득 들여 놓으면 마음이 흡족했다. 외풍이 심한 주택이라 창문에 비닐을 덧씌우고 가장자리를 고정시켜서 참문틈새로 들어오는 찬바람을 막아버려야 했다. 시장에 가서 아이들 겨울 외투 하나씩 장만하고 식구들 도톰한 양말 두어 켤레씩 사들고 오면 한결 더 마음이 푼푼해졌다.

이맘때 농부들은 더욱 바쁠 것 같다. 추수를 끝낸 논과 밭들 사이에 콩밭 한 뙈기가 온몸으로 된서리를 맞으며 잎을 다 떨궈내고, 이제나저제나 주인의 손길이 닿기를 고대하는 듯이 보였다. 일면식도 없는 농부의 마음은 얼마나 바쁠지 짐작이 간다. 일 년 동안 피땀 흘린 수고로움이 수확의 기쁨으로 마무리되길 빌어본다.

겨울로 가는 길목에서 생각해 본다. 추운 겨울이 있기에 봄에 돋아나는 새싹이 경이롭고 뜨거운 여름도, 아름다운 가을도 더욱 빛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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