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봉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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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경 기자
  • 승인 2019.11.25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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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재경 국장(천안)
이재경 국장(천안)

 

구본영 전 천안시장의 상고심 재판부였던 대법원 형사2부에 지난 12일 법관들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탄원서가 접수됐다. 대부분의 탄원서는 재판을 앞둔 피고를 선처해달라는 내용이기 마련. 하지만 이 탄원서는 당시 현직 시장이던 피고를 엄중히 선고해달라는, 사실상 `봐주지 말고 법대로 판결해달라'는 내용으로 쓰여져 있었다.

재판부가 이 탄원을 고려했던 것은 당연히 아니겠지만 어쨌든 이틀 후에 있었던 피고에 대한 상고심 최종 판결은 `상고 기각'이었다.(이 판결로 구 전 시장은 정치자금법 위반죄가 인정돼 시장직을 상실했다.)

이 탄원서를 낸 단체는 천안 일봉산 지키기 시민대책위원회다. 천안시내 원도심 지역의 유일한 도심 숲이자 공원인 일봉산의 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구성된 이 단체에는 천안아산환경운동연합, 경실련, 천안시민단체협의회 등 지역 시민사회단체들과 일봉산 인근 주민과 공동주택단지입주자대표회의 등이 참여하고 있다.

구 전 시장이 대법원 판결로 시장식을 상실하게 되자 이 단체는 즉각 “구 전 시장의 당선 무효 판결은 당연한 결과”라며 환영 성명을 냈다. 무엇이 이 단체가 구 전 시장에게 이처럼 극렬한 `반감'을 갖게 했을까.

2016년부터 천안 일봉산 민간 공원 개발 사업의 추진 과정을 되짚어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2020년 7월 도시공원 일몰제 마감 기한을 5년 앞둔 2016년 8월 천안시에 일봉산 민간공원 개발을 위한 사업 제안서가 접수됐다. 사업 시행자인 A개발은 일봉산 일원 25만5158㎡를 개발해 공원으로 조성해 천안시에 제공하고 이중 30%의 면적인 6만8824㎡에 2700여 세대의 아파트를 짓겠다는 계획서를 제출했다. 이후 시는 A사를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했으며 2018년 11월 도시계획위에서 A사의 제안을 조건부로 통과시켰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일봉산 개발 계획은 일반 시민에게 제대로 알려지지않은 채 진행됐다. 뒤늦게 이를 한 환경단체 등이 대책위를 꾸리고 주민공청회 등 여론 수렴 절차를 제안했으나 허사였다. 특히 지난 9월에는 구 전 시장과 면담을 통해 일봉산 개발과 관련한 민관협의체를 구성할 것을 약속받았으나 무위로 끝나고 말았다. 대책위를 더욱 황당하게 했던 것은 지난 8일의 일이었다. 자신의 시장직 상실 여부가 걸린 대법원 상고심 판결 기일을 불과 6일 앞두고 구 전 시장이 사업시행자와 전격 일봉공원 민간 특례사업 개발 협약을 체결한 것이다. 금강유역환경청에서 환경영향평가가 진행중인 상황에서, 특히 1, 2심에서 이미 당선 무효형에 해당하는 유죄 판결을 받았던 구 전 시장인지라 대책위의 실망감과 허탈감은 극에 달했다. 상고심 판결을 앞두고 대법원장에게 `엄중 선고'를 촉구한 이유다.

6일 후 협약 체결의 당사자인 구 전 시장이 대법원 최종 판결로 시장직을 상실했지만 협약은 여전히 유효하다. 개인 구본영이 아니라 천안시장 구본영의 직인이 찍힌 협약서가 존재하게 때문이다.

일봉공원 특례사업의 진행 과정에서 가장 아쉬운 대목은 협치 정신의 실종이다. 갈등이 불보듯 뻔한 상황에서 여론 수렴과 중재에 나섰어야 할 행정부는 3년여 동안 제대로 된 주민설명회조차 열지 않았다. 그 과정이 이어져 오면서 지금의 갈등을 불러왔다. 이웃 청주시의 경우 구룡공원 특례 개발로 논란이 일자 민관이 참여하는 거버넌스를 발족시켜 얼마전 최선의 결과를 도출했다. 백번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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