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과 정의
판결과 정의
  • 하은아 진천교육도서관 사서
  • 승인 2019.11.25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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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말하는 행복한 책읽기
하은아 진천교육도서관 사서
하은아 진천교육도서관 사서

 

판사하면 솔로몬이 떠오른다. 솔로몬은 아이의 진짜 어머니를 구별하기 위한 재판에서 지혜로운 판결을 내린 정의의 상징으로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다. 아직도 판사의 말은 곧 의심할 여지가 없는 정의이자 법이며 거스를 수 없는 명령과 같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먹을수록 그렇지 않은 경우의 수가 많으며, 억울한 일도 비일비재 일어난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의 판단은 사람의 삶의 방향을 달라지게 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요즘 개혁과 혁신해야 할 곳으로 가장 먼저 검찰과 법원을 꼽는다. 가장 정의로운 곳으로 그 누구의 의심도 받으면 안 되는 곳인데 대중들의 입에 거칠게 오르내린다. 씁쓸하다. 사람이 사람을 판단하는 일이 과연 항상 정의로울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든다. 솔로몬의 지혜가 정말 필요한 시대이다.

도서 `판결과 정의'(김영란 저·창비· 2019)를 몇 번이나 들었다 놨다 했다. 저자는 그 유명한 김영란이었다. 김영란법으로 널리 이름을 떨친 그 사람이었다. 정의가 무엇인지 누가 누구를 개혁할 것인지 생각조차 하기 싫은 요즘에 이 책은 기름을 붓는 격일 것 같았다. 내가 그 무엇 하나 해결하지 못하면서 마음만 심란할 것 같아서 이 책을 고르기를 주저했다. 나의 섣부른 판단이었다.

이 책은 판사였던 저자가 전원합의체 판결인 대법원의 판결들을 논하고 있다. 대법원의 판결이 사회분위기와 경제, 정치상황과 얼마나 밀접한 관련이 있었는지를 보여주고 있으며,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를 책은 설명해주고 있다.

대법원의 판결문은 어렵다. 몇 번을 다시 읽어야 이해되는 말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법원의 판결이 판사들의 고뇌와 번민과 신중한 선택이었음이 느껴지기도 했다. 특히 이 책에서 다룬 가부장제 관련한 판결과, 성희롱 교수의 해임결정취소에 관련한 판결은 시대의 변화를 가장 민감하게 읽을 수 있는 사례였다.

나는 권위적인 아빠와 남아선호사상이 강한 엄마 밑에서 커온 딸이자, 여자가 이래야지 등의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듣고 살아왔다. 부모로부터 하나밖에 없는 오빠인데 라는 말을 아직도 자주 듣는다. 그런 대우에 반발을 하면 부모님은 어김없이 나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린다. 대를 잇는 존재, 존재만으로도 마음을 든든하게 해주는 그런 아들이기에 딸들이 감내할 것들에 대해서는 이해하려 하지 않으신다. 시대가 변하는 과정에서 80이 넘으신 부모님은 요지부동이다. 아들이 방문하는 날이면 여지없이 딸들을 호출하신다. 저녁을 무엇을 먹을지 아들이 내려오면 다 같이 복작거려야 한다는 생각을 딸들도 당연히 좋아할 것이라 생각한다.

아이러니하게 대법원의 판결 배경이 우리 부모님의 사고방식을 조금 너그럽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부모님은 아직 농경사회의 가부장적 위계질서 속에서 살고 있었다. 조금 위로받고 이해받고 있는 것 같았다.

법을 다루는 사람도 사람이다. 다만 그들이 맡은 일에 따라 사람의 삶과 사회가 변할 수 있다는 것에 큰 책임감이 있는 그런 사람일 뿐이란 생각이 들어 그들이 안쓰러웠다. 인간미가 없어 보이던 판사라는 직업에 인간미가 생기는 그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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