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약포 정탁은 어디 있는가
이 시대의 약포 정탁은 어디 있는가
  • 이영숙 시인
  • 승인 2019.11.24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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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엿보기
이영숙 시인
이영숙 시인

 

내가 유일하게 시청하는 TV 프로는 종편의 스테디셀러 `나는 자연인이다'프로이다. 무위자연의 공간에서 참되고 순수하게 살아가는 자연인의 모습에서 사람다움을 느끼는 까닭이다. 그 외에는 TV를 잘 켜지 않는 편이다. 누구를 위한 방송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예능프로그램 대부분은 공적 프로그램을 인식 못 할 정도로 누나, 형, 언니 등 사적인 호칭을 쓰며 시청자에 대한 예의는 아예 안중에도 없다. 그런 그들만의 리그에 시청료까지 지불하며 돈과 시간을 과소비하고 있으니 1등 시민은 아니다. 그러나 누구를 탓하랴. 시청자의 구미가 만들어낸 기호일 수도 있고 수요에 대한 공급의 창출일 수도 있는 걸. 고개 들어 오래 바라볼 수 있는 곳 하늘밖에 없으니 맘껏 저 드넓은 하늘을 향유할 수밖에. 이따금 책을 사다리 삼아 어둠 가운데 빛나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감상할 뿐이다.

정진호의 그림책 《별과 나》는 이야기 한 줄이 없는 그림책이다. 주인공 `나'가 타고 달리던 자전거의 라이트가 갑자기 나간다. 어두운 밤길을 천천히 서행하는 중에 `나'는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다. 머리 위에서 음표처럼 펼쳐지는 무수한 별, 사선처럼 빗금 치는 별똥별, 별무리처럼 따라붙는 반딧불이, 꿈처럼 퍼지는 폭죽, 크리스마스트리처럼 하나둘 켜지는 골목의 가로등, 불을 켜고 쌩쌩 달렸을 때는 안 보였던 아름다운 것들이다. 어둠이라는 배경 속에서 천천히 걸어야만 볼 수 있는 불꽃들이다.

그러고 보면 인간 세상에도 어둠처럼 드러나지 않고 일인자를 만들어낸 일인자 못지않은 이인자들이 많다. 조선 선조 때의 인물 이순신 장군과 좌찬성 약포 정탁이다.

“나를 천거한 이는 서애 류성룡이요, 나를 살린 이는 약포 정탁(鄭琢, 1526~1605)이다.”

문신 약포 정탁은 불멸의 이순신을 역사에 남긴 숨은 그림자다. 그는 1592년 임진왜란 발발 시 선조임금을 의주로 호종한 청주 정씨 가문 출신이며 도승지, 대사헌, 판서, 좌의정, 우의정을 두루 역임했다.

정탁은 동서 붕당의 어지러운 정치 소용돌이 속에서 옥고 중인 이순신을 1,300 여자가 넘는 긴 상소문으로 구명한 인물이다. 정탁의 구명으로 이순신 장군은 명량해전에서 12척의 배로 왜구 133척과 맞서 기적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그뿐만 아니라 홍의 장군으로 알려진 의병장 곽재우와 김덕령을 천거하고 억울한 누명을 쓴 이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설 정도로 의로운 인물이다. 당시 서인 중심의 정권하에서 동인으로서 `아니오'로 대적한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는 일이다. 숙직 중에 명종의 모친인 문정왕후가 불공을 드리려고 향을 가져오라고 하자 `향은 나라의 제사에 쓰려고 준비해둔 물건이므로 개인이 드리는 불공에 내줄 수 없다'고 거절할 만큼 소신 또한 확고한 인물이다.

지금까지도 이순신 후손이 정탁의 기일에 참례하는 것으로 보아 당시 정탁의 구명 행보가 위험천만 가운데 진행된 민감한 사안임을 가늠케 한다. 약포 정탁이 어둠이라면 이순신은 약포라는 어둠 덕으로 빛을 발한 인물이다. 모두가 권력에 빌붙어 지록위마指鹿爲馬를 주장하는 시대에 `예와 아니오'를 분명하게 했던 정치인, 이제 그 약포 정탁 같은 이를 어디에서 찾을까? 대의는 실종되고 정의는 파산되고 예의는 전설이 된 세상에서 그나마 풀빛 인성 그대로 지니고 사는 순박한 사람이 그리워 `자연인'을 보며 대리 만족을 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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