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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4.26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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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공대 참사가 주는 교훈

이재은(논설위원, 충북대 교수)

 지난 16일 오전 미국의 버지니아 블랙스버그에 있는 버지니아 공대에서 발생한 참극은 우리나라는 물론 온 세계에 커다란 충격과 슬픔을 안겨주었다. 조승희 군을 포함하여 33명이 사망하고 20여명 이상이 부상을 당한 대규모 참극이었다는 사실 말고도 이번 사건이 가져다주는 충격은 어느 사회에서나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사건 보도 초기에 있었던 경악과 놀라움은 참극의 당사자가 한국계 출신 이민 학생이었다는 사실에 기인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기에 노무현대통령을 비롯한 여야 정당 및 사회단체의 유감 성명도 신속한 대응이었고 적절한 처사였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미안하고 송구스러운 것이 우리네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에 살고 있는 교포나 유학생의 경우에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암담함과 불안함을 느꼈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네 심정을 헤아리고 위로하는 미국 시민들과 언론, 그리고 미국 사회 전반의 성숙한 분위기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기 까지 한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분노보다는 용서와 화해를 선택하고 강조하는 미국의 시민사회 정신과 분위기에 더욱 놀라웠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건 당사자에 대한 비난보다도 그 역시도 희생자라는 차분한 논리에 또 한 번 놀랐다. 더욱이 조승희 군에 대한 추모와 더불어 그에 대한 좋은 기억을 되살려내려는 모습은 어쩌면 우리네 사정과 대비되기까지 하였다.

이번 사건의 여운은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조용하고도 긴 여운을 남기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마찬가지의 반응이 나오고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다민족 다인종 국가인 미국의 경우와 달리 단일 민족임을 자부하는 우리의 경우에도 이미 5만 여명 이상의 외국인이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 있다.

국적을 취득하지 않고 한국에서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의 숫자가 훨씬 더 많다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이제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고 호흡하고 있는 이들에 대해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이미 공동체를 함께 구성하고 있고 특히 농어촌 지역에서는 함께 뿌리를 형성해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혹시나 차별과 편견을 여전히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한다.

인간 생명에 대한 존중과 인간의 존엄성 보장이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구현하기 위하여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시민사회가 얼마나 관심을 갖고 노력해 왔는가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또한 우리 사회에서 같은 핏줄을 갖고 사는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들과 그 자녀들이 지닌 고통과 억울함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봐야만 할 시점이다.

같은 사회 내에서도 문화적 차이를 실감하고 일상적 차별을 견디기 힘들어 하는 사람들은 없는지, 법적으로는 한국인이 된 귀화자들마저도 살아가기가 무척 힘든 상황에서 외국인 신분의 이주노동자나 불법체류자들은 어떻게 생존해 나가고 있는지 등을 사려 깊고 신중하게 살펴봐야 한다.

그동안은 먹고 살기에 바빠 물질적 가치를 숭상하고 사람이 배제된 정책이 우리 사회에서 우선될 수밖에 없었을 수도 있다. 아직도 경제 성장이나 지역 발전 모델이 국가 사회나 지역 사회의 시대적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인류가 함께 살아가고 함께 발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정신적 가치의 공유가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이제라도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면서 아직은 불거져 나오지 않았지만 언제든지 공동체를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는 다양한 사건들을 예방하고 대비하기 위한 노력이 조용한 가운데서 이루어져야 한다.

오늘 날의 사회는 과거와 달리 복잡성과 다양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만의 노력으로는 문제를 사전에 예방하기는 역부족이다. 사회 시스템 내부에서 발생하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시스템 내부의 문제 해결 능력과 관리 역량을 높이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이번 사건의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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