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의 눈물
낙타의 눈물
  • 김성일 보은 아곡 은성교회 담임목사
  • 승인 2019.11.21 17: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낮은자의 목소리
김성일 보은 아곡 은성교회 담임목사
김성일 보은 아곡 은성교회 담임목사

 

세상은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좋아진 세상이 되어 버렸는데 사람들은 왜 이렇게 그 풍요로움과는 상관없이 더 삭막해 지기만 하는 것일까요? 없이 살아도 따뜻한 인간적인 정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던 그런 때가 있었는데 요즘 세상은 한 단어로 비유하자면 꼭 사막과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사막에 최적화된 동물이 있습니다. 바로 낙타입니다. 다른 동물은 몸의 수분이 29%만 없어져도 죽지만 낙타는 40%가량을 잃어도 죽지 않고 5~6일 동안은 먹지 않고도 일하며 한 달 이상은 물을 먹지 않고도 살 수 있다고 합니다. 발바닥은 부드럽고 두꺼워 사막을 걷기에 알맞고 낙타의 콧구멍은 열었다 닫았다 할 수 있어 모래가 흩날려도 잘 견딜 수 있으며 귀에는 털이 있어 모래가 들어가지 않게 되어 있다 하니 이보다 더 사막에 최적화된 동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낙타는 당연히 사막을 위한 최적화 된 동물이니 낙타가 그 사막을 지내는 것은 너무나 쉽고 당연한 그러한 일인 줄 아는 오해와 편견이 있었습니다.

최근에 들어 낙타의 눈물이란 다큐멘터리를 접하면서 저는 낙타에 대해 무지하고 오해와 편견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든 내용을 다 이야기할 순 없지만 출산을 할 때 컨디션이 나쁜 낙타 어미는 새끼를 품지도 않고 젖도 먹이지 않습니다. 방치하면 결국 죽게 됩니다.

모든 생물의 모성애는 부정할 수 없는데 어떻게 새끼에게 젖도 주지 않고 품을 생각도 하지 않을까? 모성애 자체를 잃어버린 것인가? 하는 의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낙타의 주인은 그 모습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마두금이란 악기를 연주합니다. 그리곤 낙타를 어루만지며 구슬픈 노래를 들려주기 시작하는데 한동안 그 구슬픈 노래와 연주를 들은 낙타는 신기하게도 눈물을 흘리기 시작합니다. 한동안 눈물을 쏟은 낙타에게 새끼를 붙여주면 그제야 새끼를 품고 젖을 먹이기 시작합니다.

저는 낙타가 그렇게 최적화된 사막의 동물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막의 척박함은 그냥 최적화가 되어서 지내는 것이 아니라 모성애를 잃어버릴 만큼 처절한 낙타의 몸부림이며 고통의 감내이고 괴로움의 인내였던 것입니다.

척박한 사막은 모성애조차 잃어버리게 할 만큼 낙타에겐 고통과 괴로움의 장소였던 것입니다. 마두금 연주는 뛰어난 실력자가 연주하며 노래는 자식을 많이 낳은 여인이 부른다고 합니다. 그 연주와 노래를 통하여 낙타는 눈물을 흘리게 되는데 그때 그 척박한 사막의 고통에서 잃어버린 모성애를 되찾게 된다고 합니다. 아마도 여인의 공감과 진심 어린 노래가 감동을 주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신앙과 믿음의 사람들이 이 사막과 같은 세상을 살다 보면 본의 아니게 하나님이 주셨던 우리의 선하고 아름다운 마음들을 잃어버릴 때가 있을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 그냥 쉽게 세상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처절한 몸부림으로 힘겹게 살아가고 있으니 지금 우리에게도 낙타의 눈물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사막의 삶의 무게로 감격과 감동을 잃어버린 세상에 소소한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도 느끼지도 못해서 모성애를 잃어버린 낙타처럼 그렇게 살고 있지는 않나 돌아보시고 이제는 삶의 주변에 들려지는 하나님의 소소한 일상의 은혜로 감동과 감격을 누려 우리에게 주신 아름다운 마음들을 되찾는 귀한 날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딤후 1:7)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