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수당과 멧돼지
농민수당과 멧돼지
  • 석재동 기자
  • 승인 2019.11.20 20: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데스크의 주장
석재동 부장
석재동 부장

 

`농민수당'도입 여부가 올해 겨울 충북도를 뜨겁게 달굴 전망이다.

도에서는 영세한 농가를 지원해주는 `충북형 농가 기본소득보장제'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소득보전형 사회보장제도와 같은 개념이다. 이시종 충북지사의 공약사업이기도 하다.

기본소득보장제는 농업경영체로 등록해 실제 영농에 종사하고, 농지면적 0.5㏊ 미만 농가 중 농업소득이 연간 500만원 이하인 영세한 농가를 지원하는 것으로 큰 골격이 잡혔다. 농가당 1년에 최저 50만원에서 최대 120만원까지 지원한다. 내년 사업비는 도비 10억4700만원, 시·군비 24억4300만원 등 총 34억9000만원이다. 수혜 농가는 도내 농업경영체 등록 11만8000여호 중 4500여호, 즉 3.8%만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한다.

지지부진하게 추진되던 이 사업은 지난 9월 열린 간부회의 당시 이시종 지사가 호통을 치면서 급물살을 탄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전국농민회총연맹 충북연맹 등 15개 단체로 구성된 충북농민수당주민발의추진위원회는 농민수당 전면 도입을 주장하며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농민수당은 농업의 공익적 기능에 대한 사회적 보상의 일종으로 전남 해남군에서 처음 도입했다. 모든 농가에 똑같이 지급하고 있다.

해남군의 농민수당은 들불처럼 번져 전남·북 전체 시·군에서 내년도 도입을 목표로 준비 중이다. 충남, 경기, 강원 등 광역지방자치단체도 도입 논의에 돌입하는 등 전국적인 현상으로 확대되고 있다.

농민단체의 주장대로라면 도내 농업인 7만5000명에게 매달 10만원씩 주어져야 한다. 이에 필요한 예산은 연간 900억원으로 예상되고, 이중 도비는 27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도와 농민단체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차만큼 갈등 상황도 험악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지난 19일 도의 기본소득보장제 발표를 지켜보던 농민단체 관계자들은 거센 항의와 함께 즉각 기자회견을 자청해 도를 향해 경고했다.

농민단체 관계자들은 당시 “도의 기본소득보장제 도입은 농민수당 도입을 막기 위한 꼼수”라며 “선별 농가만이 아닌 모든 농민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농민수당 신설을 위해 농민·사회단체와 연대해 강력히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의지는 일의 속도를 좌우하는 중요 요소 중 하나다.

도는 지난달 21일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차단을 위해 하루 멧돼지 포획 수를 100마리 이상 늘릴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는 이시종 도지사의 지시 이후 맹렬하게 목표 달성을 위해 경주하고 있다.

지난 1월부터 9월까지 3857마리를 포획해 하루 40마리에도 미치지 못하던 포획량은 이 지사의 지시 이후 매일 100마리에 육박하는 멧돼지를 포획하는 수준으로 급격히 올라갔다.

도지사가 의중에 두고 있는 기본소득보장제 도입과 멧돼지 포획량 확대는 정말 빨리 목표를 달성했다.

농민들은 농업을 호구지책으로 삼고 있지만, 국민들이 믿고 먹을 수 있는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한다는 자부심도 갖고 산다.

그런데 도의 기본소득보장제 도입 발표에선 농민들의 자부심을 인정해주는 공감능력이 읽히지 않았다. 지금 농민들에게 필요한 건 도지사의 공약 달성보단 그들의 자부심을 훼손하지 않으려는 도의 최소한 노력일지도 모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