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나무는 애증이다
감나무는 애증이다
  • 임현택 수필가
  • 승인 2019.11.19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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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임현택 수필가
임현택 수필가

 

감나무단지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지난 주말 지인의 생전부모님께서 관리하시던 경상도 하동 감나무단지, 그것도 대봉감을 딴다는 설렘에 마음이 먼저 앞선다. 지근거리도 아니고 청주에서 하동까지 서너 시간을 달려야만 감나무단지에 도착한다.

자손들이 외지에서 생활하다 보니 관리가 되지 않아 무성한 잡초로 우거져 있었음에도 대풍작인 감, 감나무도 해거리한다는데 올해 유독 많이도 열렸다. 가지가 휘어지고 나목마다 황금빛이 더 빛을 발하여 풍경화처럼 펼쳐진 감나무, 모두가 흥분되어 감처럼 붉어진 얼굴로 환호성이다. 대봉감나무사이에 침시감나무 한그루도 뒤질세라 가지마다 주렁주렁 많이도 매달아 놓았다.

감나무 아래에서 침시감 먹는 상상에 절로 손길이 빨라진다. 생전친정어머닌 항아리에 뜨끈한 소금물에 감을 담가 이불을 푹 덮어 침시감을 만드셨다. 퓨전시대라더니 요즘은 소주 한 병이면 그만이다. 오목한 바가지에 소수 한 병을 붓고 감을 데굴데굴 굴려 비닐봉지에 밀봉하여 실온에서 이삼일 정도 지나면 단감보다도 더 단단한 침시감이 된다.

목울대가 뻐근하다. 섬을 떠나야 섬이 보인다는 말처럼 하동에서 감을 따고 있노라니 친정집 울타리에 붉은 감을 매달아 놓은 속이 텅 빈 감나무가 선하게 그려진다. 흐릿해진 시야 감꼭지만 만지작거렸다. 생전어머니모습이 닿을 듯 말듯 슬쩍 스쳐진다. 생전어머닌 마당울타리에 감꽃이 하얗게 떨어지면 목걸이를 만들어 감나무에 걸어놓으셨다. 오뉴월에 감꽃을 실에 꿰어 목걸이를 목에 걸면 아들을 낳는다고, 시집간 딸들을 위해 목걸이를 만들어 걸어놓았던 것이다.

이런저런 상념에 잠겨 한참 풀 속을 헤치며 감을 따고 나오니 고슴도치모양이다. 도깨비 풀이 얼마나 많던지 바지며 신발 장갑에도 온통 도깨비바늘이 꽂혀 있다. 일행 모두가 길가에 털썩 주저앉아 도깨비바늘을 뜯고 있자니 “에구, 엄니가 못 가게 붙잡나 보네, 자식이 뭔지 많이 기다리셨나보네” 동네 어르신은 넌지시 한마디 건네시며 혀를 찬다. 순간 코끝이 짠하다. 지인도 목까지 차올라온 어머니의 사모하는 마음을 애면글면 꾹꾹 누르고 계셨을 터. 우물쭈물 난색한 표정의 지인, 동네 어르신의 한마디는 그리움을 울컥 토하게 하였다. 난 애써 눈길을 피했다. 괜스레 신발코로 땅바닥 돌멩이를 툭툭 걷어차며 슬그머니 먼발치를 응시했다.

생전 지인 어머니는 서리가 내리기 전 수확한 감을 박스마다 자식이름을 꾹꾹 눌러쓰시어 집집이 택배로 보내주셨다. 정작 당신은 수매하고 남은 파치 감을 드셨다.

지인은 감 수확할 때마다 서럽단다. 그립단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있기 때문에 매년 먼 거리를 달려온단다. 그래서 감나무를 베어버리지 못하는 이유 하나다. 감나무는 애증이다. 그리고 연민이었다. 감이 일찍 물들면 첫눈이 빨리 온다는데 반가움보다 애잔하게 안길 것 같다 올겨울 첫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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