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19.11.19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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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찬바람이 불면서 제일 먼저 알아차린 건 담쟁이였다. 아직 다른 나무들이 겨울의 숨을 느끼지도 못할 때 담쟁이는 제 몸을 서서히 물들이고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 이상타 했다. 아직 단풍철도 아닌데 너는 왜 붉고 있냐고 물었을 때도 묵묵히 제 할 일만을 할 뿐이었다. 담쟁이의 온몸이 다 붉어지자 바람은 더 차갑게 나무들을 흔들기 시작했다. 그제야 나무들은 서둘러 떠날 채비를 꾸렸다. 노랗고 붉게 더러는 아직 더 있어도 된다고 푸른 잎으로 늑장을 부리는 나무들도 있었다. 첫 서리가 내린 아침, 싱그럽던 담쟁이의 잎들은 하루 사이에 모두 힘을 잃은 채 줄기에 겨우 매달려 아슬아슬했다. 저리도 약한 데 누가 담쟁이를 보고 질기다고 했을까.

온정의 식물이다. 뜨거운 여름 그 누구도 엄두도 못 낼 높은 벽을 기어오를 때도 담쟁이는 언제나 혼자가 아니었다. 모든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함께 위로, 옆으로 올라 결국에는 온 담장을 푸르게 덮어 놓았다. 이보다 더 따뜻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담쟁이의 겉모습만 보고 빌붙어 사는 사람에 비유했었다니 담쟁이의 입장에서 보면 억울하기도 하겠다.

때는 조선 인조 14년 부수찬 김익희가 올린 상소문에는 담쟁이에 대한 비유가 나와 있다.

`빼어나기가 송백(松柏)과 같고 깨끗하기가 빙옥(氷玉)과 같은 자는 반드시 군자이고 빌붙기를 등나무나 담쟁이같이 하고 교결하기를 뱀이나 지렁이와 같이 하는 자는 반드시 소인일 것이요'

다른 물체에 붙어서 올라가는 담쟁이의 성질을 보고 소인배라 칭했던 이들을 과연 대인배라 할 수 있을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처사였다. 물도 흙도 없는 콘크리트벽을 공기뿌리로 버티고 올라 자신의 영역을 넓히는 담쟁이다. 뜨거운 태양 앞에서도 결코 무너지지 않았다. 태풍이 휘몰아치는 그 밤에도 서로의 손을 놓지 않고 벽에 붙어 무서웠을 밤을 함께 지새웠고 이겨냈다. 푸르게 올라가 곁에 있는 그 누구도 홀대하지 않고 연대감으로 똘똘 뭉쳐 같이 어깨를 겯고 나아가는 아름다운 동행이다.

요즘 홍콩에서는 범죄인 인도법안에 반대하는 시위가 격렬하게 일어나고 있다. 만약 홍콩 정부에서 추진하는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홍콩에서 위반한 범죄자를 중국으로 송환해서 처벌하게 되고, 이는 범죄인 인도법안이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한다. 반 중국 정치 활동가나 체제 비판자들이 범죄인 인도 법으로 중국으로 송환될 경우 고문이나 임의 구금, 자백 강요 등의 인권 탄압이 자행될 수 있는 소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100만 명이 넘는 홍콩 시민들의 시위는 점점 격렬해져 유혈 사태 소식도 들려온다.

우리나라가 지금의 민주주의 국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불의에 맞서 싸워 이겨 낸 많은 시민들의 연대감이었다. 연대감, 그것은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어 내는 힘이다. 혼자는 힘들어도 여럿이 하면 쉬이 해 낼 수 있는 일은 많다. 세상을 바꾸는 힘도 이와 같다. 하나의 촛불은 바람 앞에서 이겨내지 못하지만 열 개, 백 개, 천 개, 만 개 그 이상의 촛불은 강한 불기둥이 되어 아무리 강한 바람 앞에서라도 활활 타오를 수 있다.

홍콩의 시위에 우리의 국민들도 지지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따뜻한 연대감으로 우리의 자유를 지켜왔다. 담쟁이의 작은 발걸음은 온 벽을 그들의 세상으로 만들었다. 어쩌면 홍콩 사람들에게 중국은 큰 벽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홍콩 국민들의 외침과 몸부림이 부질없는 메아리는 아니라 생각된다. 부디 느리지만 담쟁이가 넓은 담장을 푸르게 밝혔듯이 홍콩의 자유의 외침도 푸르게 빛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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