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고난 사람 중심의 미래와 기계
길 위의 고난 사람 중심의 미래와 기계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9.11.19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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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지금이야 어떤지 모르겠지만 몇 해 전만 해도 일본의 고속도로에는 기계식 통행료 자동납부 시스템이 없었다. 일본 출장길에 눈에 띈 고속도로 톨게이트 요금소의 모습은 어색하고 신기했다.

나이가 지긋한 남자 요금 징수원이 통과하는 차량마다 요금을 받고 있는데 우리나라와는 달리 서 있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반드시 또 한 사람이 흔들림 없이 정면을 바라보며 앉아 있다.

사연을 들어보니 쉽게 피로해지는 고령 노동자의 건강상태를 고려해 미리 교대근무자를 배치한 것이며, 이들은 수시로 역할을 바꿔 정해진 근무시간을 채우는 2인 1조로 구성된다는 것. 그리고 고객으로부터 요금을 받으면서 앉아서 근무하는 것은 서비스에 어긋나는 것이라는 생각이 이 같은 근무형태를 이루게 됐다는 것이다.

기술이 뛰어난 일본이 기계식 자동납부 시스템을 적용하지 않고 일일이 사람의 손을 빌리는 이유 역시 기계가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궁여지책의 일환이란다.

차를 바꾸기 전까지 내 차에는 하이패스라고 불리는 기계식 통행료 자동납부 장치가 없었다. 한국도로공사가 큰 폭으로 할인행사를 하면서 하이패스 단말기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 그때의 나는 저것이 언젠가는 사람을 몰아낼 것을 걱정하면서 나만이라도 그 뻔한 결과에 쉽게 동승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끝내 장착을 거부했었다.

“무릎보다 가슴이 더 아파요.” 직접고용을 촉구하며 서울 종로에서 청와대까지 오체투지 행진을 벌인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고난이 현실이 된 2019년. 대부분이 여성인 노동자들은 `사라질 직업'이라는 조롱과 `욕심 좀 그만 부려라'라는 비난이, 땅에 꿇는 두 무릎과 두 팔과 머리까지 차례로 땅을 디뎌야 하는 육체의 고통보다 훨씬 절망적이다. 그래도 오체투지의 노동자들은 말한다. “이 땅의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생각났다.” “내가 비록 힘은 약하지만 오체투지를 하며 거리에 나선 것처럼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차가운 겨울 초입 아스팔트에, 한 때 그들이 요금을 받았을 자동차들의 위험한 질주를 피해 가며 온몸을 그 길에 던져야 했던 그들의 고난은 기계 탓인가, 사람 탓인가.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혁신적 모빌리티도 의미가 없다.' 정의선 현대자동차 그룹 부회장의 말이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오체투지와 오버 랩되는 것은 사람과 기계가 길 위에서 겹치듯 경쟁하는 극단의 시대상황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정 부회장은 자동차 천국 미국에서 열린 모빌리티 이노베이터스 포럼(MIF)에서 사람과 기계의 관계에 대한 인간적 소신을 말했다. “도시와 모빌리티는 인간을 위해 개발되고 발전해 온 것으로 현대차그룹은 인문학적 관점에서 인간 중심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모빌리티를 연구하고 있다.”고 소개한 그는 “1995년 이후 샌프란시스코는 모빌리티가 공유 개념으로 바뀌는 큰 변화를 겪었지만 차량 소유 개념은 사라지지 않았고, 새로운 서비스가 기존의 문제점들을 완전히 해결하지 못했다.”면서 “새로운 모빌리티를 수용할 수 있는 도시계획이 함께 실현되지 않는 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세계 굴지의 자동차 생산 공장을 이끌고 있는 그룹 오너의 생각은 융·복합에서 비롯된다. 융·복합의 시작은 원활하고 긴밀한 소통이다. 자동차가 인간의 편리한 운송 수단이라는 단순한 기계적 장치로만 진화할 것이 아니라 도시 전체의 기능과 역할, 그리고 진정한 휴머니티로 이어지는 복합적 생태계의 일환으로 작동해야 한다는 뜻이다.

`타다'가 기소되는 엄연한 현실적 법질서를 두고 갑론을박하는 세태 역시 기계적 시스템이 우선인가, 사람이 우선되는 감성 중심의 사회가 그리운 것인가에 대한 경계의 넘나듦에 대한 성찰이 여러모로 부족한 탓이다.

기계가 인간의 지배에서 벗어나 인간을 조종하고 통제하며, 일자리마저 빼앗아 마구 궁지로 몰아넣는 미래는 이미 충분히 예견된 바 있다. 자동차 문을 열며 기계와 사람의 상관관계를 생각한다. 우리는 얼마쯤 사람으로 길 위에서의 고난을 버티고 견디며 더불어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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