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편견
익숙한 편견
  • 추주연 충북단재교육연수원
  • 승인 2019.11.13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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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추주연 충북단재교육연수원
추주연 충북단재교육연수원

 

일곱 살 동백은 가난 때문에 엄마에게 버림받았고 그날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고아원에서 자라게 된 동백은 자신을 가엾게 여기면서도 곁에는 두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시선에 상처받기 일쑤였다. 사람들은 미혼모에 술집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동백에 대해 수군거리고 따돌렸다. 동백은 길을 걸을 때 늘 고개를 숙인 채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누가 말을 걸어 대답할 때에도 말끝을 흐리는 사람이 되었다.

드라마 속 주인공 이야기다. 편견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바꿔 놓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세상의 편견에 갇힌 삶을 살아가는 건 드라마 주인공뿐만이 아니다.

얼마 전 일 년에 한 번 받는 정기검진을 위해 KTX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병원 예약 시간보다 두어 시간 일찍 도착한 터라 느긋하게 택시 정류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느릿한 걸음 바로 앞에 양손에 한 명씩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를 데리고 허둥지둥 계단을 내려가는 젊은 엄마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예닐곱 살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는 한 손은 엄마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핸드폰을 코앞까지 가져와 화면에 푹 빠져 있다. 동생인 듯 어린 여자아이는 잠이 덜 깼는지 내내 칭얼거린다. 두 아이 챙기느라 버거워 보이는 모습에 안쓰러운 마음이 들던 순간, 뒤에서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줌마, 거기 애기 엄마!”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는데 계단 꼭대기에 하릴없이 앉아있던 노숙인이 성큼성큼 내려온다. 광장을 가로질러 아이 엄마를 따라잡은 노숙인은 빨간색 작은 지갑을 건넸다. 아이 엄마가 등에 메고 있는 작은 배낭은 옆구리 지퍼가 반쯤 열려 있다.

몇 번이나 허리를 숙여 연신 인사하는 아주머니 모습에 함께 안도했다. 그냥 택시를 탔더라면 낭패할 수밖에 없었을 텐데 말이다. 지갑을 주워 주인을 찾아주는 노숙인의 마음씨가 살갑고 따뜻했다.

`노숙인이 지갑 주인을 찾아주다니…. 어쩜, 좋은 사람이네.'

순간 내 마음속 목소리에 흠칫 놀랐다. 선행의 주인공이 기차역 계단을 전전하는 노숙인이라는 것에 감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저 사람의 겉모습을 보고 판단했구나. 단맛 코팅이 벗겨진 당의정을 물고 있는 것처럼 입 안 가득 쓴맛이 느껴졌다.

김지혜는 저서 『선량한 차별주의자』에서 호모 카테고리쿠스(Hom o categoricus), 즉 인간은 범주적 동물임을 상기시킨다. 성별, 나이, 직업, 종교, 출신 국가 등의 정보를 범주화하여 이해하는 것이다. 같은 것과 다른 것을 분류하는 범주화를 통해 효율적으로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범주화의 또 다른 이름은 고정관념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고정관념에 부합하는 사실에 더 집중하고 더 잘 기억한다. 결과적으로 고정관념을 점점 더 확신하게 되고 고정관념과 충돌하는 사례를 보더라도 쉽게 바꾸지 않는다.

고정관념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편견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어리니까, 남자라서 혹은 여자라서, 노숙인이라면…. 나 역시 익숙한 편견으로 무뎌진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아닌지 쓰디쓴 질문을 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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