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과 공복에게
선량과 공복에게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19.11.13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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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참 희한한 세상입니다. 며칠 전 있을 수 없는 있어서도 안 되는 초유의 사태가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벌어졌습니다. 답변 당사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업무관련성이 있는 것도 아닌 피감기관 공직자가 국민을 대신해 국정감사를 하는 국회의원에게 삿대질하며 고성으로 모욕을 주고 겁박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막장 드라마 같은 광경을 언론을 통해 목도한 국민들은 아연실색했고, 분노했으며,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더더욱 놀라운 것은 여태까지 그에 상응하는 이렇다 할 조치가 없다는 점입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국회의원이 제1야당의 원내대표라서가 아니라 사고를 친 용감무쌍(?)한 공직자가 다름 아닌 국회와 야당과의 원만한 소통과 협조를 위해 존재하는 청와대 정무수석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여·야의 문제도 아니고 진보와 보수와의 문제도 아닙니다. 또한 진영논리와 내 편 네 편의 문제로 접근할 문제도 아닙니다. 공직자의 자세의 문제이고 존재에 대한 근본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난장판 국회와 저질 국회의원들에게 기대를 접은 국민들이 많습니다. 함량 미달과 안하무인과 모리배 같은 의원들이 설치고 있어서입니다. 그런 그들은 국회에서 우리를 대신해 일 좀 하라고 뽑았으니 자업자득입니다.

하지만 공직자들은 그들이 곱든 싫든 국민의 공복으로서 국민의 대표성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질문 같은 질문이 아닐지라도, 억지 주장을 펼치거나 왜곡된 정보를 가지고 힐난하고 따질지라도 성실히 답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아닌 것은 왜 아닌지를 소상히 설명하고 이해 납득시켜야 합니다. 국정감사이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나경원 의원이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에게 `우기지 좀 마세요'라고 하면 정 실장은 왜 우기는 게 아닌지 답하면 됩니다. 그런데 뒷자리에 앉아있던 권한 외인 강기정 정무수석이 느닷없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버럭 소리를 지르고 삿대질하며 `똑바로 하시오'라고 한 것은 묵과할 수 없는 국회와 국민에 대한 도발이자 폭거입니다.

서슬 퍼런 군부독재 시절에도 보지 못했던 진풍경이 벌어졌으니. 그땐 정권에 위협이 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안가로 끌고 가 못된 짓을 했을 터이지만 적어도 국민들이 지켜보는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만큼은 자세를 낮추었거든요.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을인 피감기관 공직자가 피감기관의 잘잘못을 따지고 파헤치는 국감장에서 갑인 국회의원에게 그리하니 세상 변해도 참 많이 변했습니다. 아무튼 이번 사태는 개인의 성정으로 인한 일탈이나 해프닝으로 치부하기엔 사안이 심대하고 위중해 유감 표명이나 사과로 덮을 일이 결코 아닙니다.

이대로 유야무야 하면 진보진영이 정권을 잡든 보수진영이 정권을 잡든 국회와 국민을 무시하고 겁박하는 제2 제3의 강기정이 속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초단체에 근무하는 공직자들조차도 행정사무감사를 하는 지방의원들에게 그러하지 않거늘 국정의 컨트롤타워를 자임하는 경륜이 깊은 청와대 간부들이 그리하는 건 언어도단입니다.

오죽하면 그랬으랴 하는 동정여론도 없진 않으나 일벌백계하고 추후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의지 표명이 있어야 마땅합니다. 5개월 후면 21대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이 치러집니다.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 도래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도 반환점을 돌았거니와 국가와 사회에 해결해야 할 과제들과 현안들이 산적해 있어서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옥석을 가려 일꾼들을 잘 뽑아야 합니다. 그래야 나라의 미래가 있습니다.

공복들이 의원들의 권위와 권능에 압도되어 더 열심히 더 올곧게 일하는 나라, 그런 나라로 거듭나게 해야 합니다. 선량은 선량다워야 하고 공복은 공복다워야 하기에.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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