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크(junk)’ 그들이 움직인다 
`정크(junk)’ 그들이 움직인다 
  • 강석범 진천 이월중 교감
  • 승인 2019.11.13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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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강석범 진천 이월중 교감
강석범 진천 이월중 교감

 

필자가 10여 년 전 처음 문의면 대통령별장 `청남대'를 방문했을 때의 기억입니다. 입구 잔디밭에 세워진 5~6미터 크기의 거대한 로봇 같은 물체를 보고 “저건 뭐지?” 가까이 다가가, 엄청난 덩치와 쇳덩이의 무게감에 크게 놀란 기억이 있습니다. 온통 커다란 고철 무쇠 덩어리로 용접된 강철 로봇은 첫인상이 기분 좋지도,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았던 정말 이상한 `발견'같은 개인적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그때의 놀람을 전혀 다른 곳에서 여행 중 다시 만났습니다. 그리고 이번 만남은 놀람을 넘어 내게 신선한 질투로 오래 기억될 듯합니다.

10여 년 전 만난 그들보다 훨씬 크고 강력한 어벤져스가 된 로봇 친구들과, 색다른 형태의 고철 덩어리들이 넓은 운동장에 가득 모여 있는 곳! 이곳은 바로 충주 `오대호아트팩토리'라는 곳입니다. 2007년 폐교한 초등학교에 문을 연 `정크아트 갤러리'이기도 합니다.

정크아트는 쓰레기와 잡동사니를 의미하는`정크(junk)'와`예술(art)'의 합성어로,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폐품을 활용해 만드는 미술을 가리키는 용어로 정의됩니다. `오대호아트팩토리'는 국내 정크아티스트 1호라 일컬어지는 오대호 작가의 다양한 작품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10여 년 전 당시 날 놀라게 했던 로봇들과 확실히 구분되는 건, 이 고철 덩어리들이 움직임을 갖추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다만, 로봇들은 SF영화에서처럼 스스로 움직이는 게 아니고 반드시 누군가의 호기심 있는 작동에 의해 움직입니다. 따라서 그동안 거대 로봇에 압도당해 심리적으로 위축되었던 감상자의 입장을 벗어나, 고철 작품들을 눈으로 보고 만지고 작동하며, 기계들의 움직임을 통해 신나는 재미까지 느끼는, 능동적 `오감만족' 체험놀이를 같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상상력을 발휘한 기발한 작품들은 마치 영화 속에나 나올법한 뼈대만 있는 이상한 자동차나 옆으로 달리는 자전거들로 탄생해 운동장에 넘쳐납니다. 운동장에 발을 들인 순간 모든 앵글은 영화 속 한 장면이 됩니다.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동심으로 돌아가 이 마법 같은 세계에서 한동안 빠져나올 줄 모릅니다. 눈앞에 펼쳐진 정크아트 작품들은 제멋대로 사람들과 만나고 낄낄대며 삐걱삐걱 뛰어다닙니다.

근육질의 터미네이터 같은 거대한 로봇들은 마치 근위대장처럼 운동장 구석구석을 호위하듯 서 있고, 관객들은 움직이는 로봇들과 함께 운동장을 캔버스 삼아 쉴 새 없이 새로운 작품을 그려 냅니다.

한 개인의 예술적 상상력이 관객들과 하나 되는 곳, 더 나아가 또 다른 상상력으로 재창조되는 곳, 이곳은 그런 전시장이었습니다. 멋진 조명도, 근엄한 관객도, 어려운 미술용어들도 없는 전시장에서, 그들의 움직임은 마치 살아있는 `드로잉' 자체였습니다.

주인장이자 오대호 작가님의 말씀이 계속 뇌리에 남습니다.

“많은 전시관을 다녀보면서 `눈으로만 보세요', `만지지 마세요'라는 문구가 아쉬웠었어요. 그래서 이곳 아트팩토리 만큼은 아이들이 아무 걱정 없이 신나게 뛰어놀 수 있는 문화예술 공간으로 만들겠다고 생각했죠. 관객이 예술가가 되는 그런 공간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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