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의 밀도
인연의 밀도
  • 이재정 수필가
  • 승인 2019.11.12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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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재정 수필가
이재정 수필가

 

엄마는 불을 때고 계셨다. 옛집에서 내가 쓰던 방의 아궁이에 장작을 활활 지피고 있었다. 불꽃은 타올라 불기둥이 되어 위로 치솟더니 무지개로 피어올랐다. 달빛도 흐린 밤하늘이 대낮처럼 환하다. 이토록 고운 무지개는 처음이었다. 눈이 부시게 찬란한 빛이 황홀하여 넋을 놓고 바라보다가 잠이 깼다.

꿈속에서라도 뵙고 싶었던 엄마였다. 돌아가시고 2년 내내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혼자 서러워 울음이 가득 고이던 지난밤에 이런 모습으로 찾아와 주었다. 반가워 다가가려 했지만 센 불기운에 가까이 갈 수가 없다. 나를 한 번 쳐다봐 주시곤 불 때는 일에만 열중이었다. 불이 괄수록 무지개는 점점 더 선명해지는 것이었다.

요즘 나의 몸에는 수십 개의 침이 꽂힌다. 맞을 때마다 무섭고 겁이 난다. 얼굴에 빼곡하게 바늘이 박히어 있자면 괜히 제풀에 섧다. 노인들에게 나타나는 증세로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다. 자다가 쥐가 나는 건 다반사고 떨림이 눈으로 시작하여 얼굴까지 옮겨왔다. 피곤하면 심해지는 증세 때문에 큰일 나지 싶어 온 병원이다. 한의사는 몸의 기운이 바닥상태라고 말한다.

어제도 퇴근 후에 들러 침을 맞았다. 가시를 잔뜩 세운 고슴도치인양 누워 있으려니 따스한 위로가 고파왔다. 전화기 안의 사람들을 훑어보지만 이 시간에 나를 달래줄 누구도 없었다. 목소리만으로도 나의 날씨를 금방 읽어내던 엄마였다. 얼굴만 보아도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았다. 그런 엄마가 전화번호 목록 어디에도 없다.

하나뿐인 내 편이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의지하여 나는 피사의 사탑의 모양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아무 때고 넋두리를 들어주고 속상한 마음을 쓰다듬던 손길이 사라진 게 악몽을 꾸는 거라고 거부했다. 아직도 얼핏얼핏 엄마의 부재가 사무치게 다가올 때마다 눈물로 앓는다. 목메도록 그립다.

무지개가 기분 좋은 암시를 담고 있어서일까. 꿈을 꾼 이후로 우울했던 마음이 안개가 걷혀 맑아졌다. 또 하루를 살아낼 힘이 생긴다. 어쩌면 딸을 염려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희망의 빛줄기로 위로하고 싶었을 것이다. 함께 걱정해주는 엄마의 마음이었다.

엄마와 나와의 인연은 천륜이다. 팔천겁의 이생에서의 인연이 죽음 앞에서인들 끊어질 리가 있겠는가. 마음 안에서 살며 무시로 나를 토닥여주는 힘, 쓰러지려 할 때마다 부축해주는 힘으로 인연을 이어가고 있었다. 같이 보낸 시간의 길이가 아닌 밀도로 확인시켜준다.

사랑이야 온도라지만 인연은 밀도라는 생각이다. 사랑이 끝나면 온도는 순식간에 식어버리기 마련이다. 차가워진 온도는 다른 누군가로 데워질 수가 있다. 사랑의 상처는 사랑으로 치유해야 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다시 다른 사랑이 찾아온다. 그러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온도는 금세 오른다.

인연은 끝나도 끊어지지 않는 질긴 정이다. 말로 표현을 하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아도 마음이 촘촘히 채워진다. 어떤 사람으로 대신할 수가 없다. 그 사람이 아니면 안 되는 게 인연이다. 엄마와는 팔천겁의 두께가 쌓인 밀도가 지금까지도 무언의 언어로 나를 위로한다.

옷깃이 한 번 스치는 것은 오백겁의 인연이라 했던가. 이제껏 수없이 스치고도 못 알아보는 인연이 있었을까. 만날 인연은 언젠가 꼭 만나진다는 인연 설이 스쳐간다. 어디서 시절인연이 때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 이왕이면 바람도 품어주는 숲 같은 인연이었으면 한다.

볼에 발그레 단풍이 드는 나의 계절도 가을이다. 설레기보다 그리움이 커지는 시간이다. 온도보다 밀도가 깊어지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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