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원 - 자연
사람, 원 - 자연
  •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비엔날레팀장
  • 승인 2019.11.12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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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비엔날레팀장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비엔날레팀장

 

저녁 늦은 비행. 허리에 무리가 갈 정도의 무거운 짐을 차에 싣는다. 온종일 지친 피곤한 몸을 차에 의지한 채 곧장 시내를 벗어났다. 어수선한 간판의 건물과 나열된 도로의 불빛을 뒤로, 칠흑의 어둠 속 손톱 같은 달을 기대하며 가쁜 숨을 참았다. 시내를 벗어나 분명 한적한 들로 들어섰는데 뿌연 어둠 속 곳곳에 불빛의 야립탑이 빼곡히 들어서 앞길 시야를 막는다. 조명시설을 한 주상절리는 아닐 터이고, 예상 밖의 풍광. 너른 들에 촘촘히 거대하게 들어선 아파트 숲이다. 오름길을 따라 길게 늘어진 돌담, 너른 면적에 가을바람을 받아 너울거리는 억새, 삼나무, 해송이 거목인 듯 중간 중간 포인트를 더하던 곳에, 무지막지한 아파트가 숨을 쉴 수 없게 장벽을 치고 있었다. 가쁜 숨을 참았는데, 마른 호흡에 숨이 멎는다. 무의식적으로 가속페달을 밟는다. 끊임없이 반복적인 도심의 불빛, 공중에 뿌옇게 흩어진 먼지와도 같은 기운은 도시의 암울한 미래를 예고하는 듯했다.

도시는 빌딩숲이 산림의 숲을 빠르게 잠식해왔고, 광활하고 울창했던 숲은 이제 숲을 가장한 외돌섬이 되어 자리하고, 삭막하고 소란스런 도심에서 잦아질 듯 가녀린 숨을 쉰다. 함께 살아가던 동물은 온데간데없고 서식지를 잃고 방황하는 것들은 무참히 사살되는 저해물이 되었다. 인간 외에는 들어올 수 없는 높은 성을 계속해서 쌓고 넓혀가고 있다. 풀 한 포기 벌레 하나 자랄 수 없는 완벽한 도시를 만들어 가고 있다.

복잡하고 고단한 삶의 도심, 간혹 자연을 동경하고 그리워하는 사람들에 의해 제한된 공간 안에 자연을 녹여내려는 노력을 보이고는 있으나 미약한 몸짓 정도다. 도시의 공간과 건물을 디자인할 때 조경공간을 만들지만, 법적인 허가절차를 끝내면 방치되고 다른 용도로 사용된다. 자연을 위한 조금의 공간조차 용납할 수 없는 인간들이다. 자연은 관리가 어렵다 하여 인공물로 가장하는 현상까지 벌어진다. 최고의 디자이너라 자처하는 사람이 모조품을 자연물인양 연출한다. 주변 사람들은 멋있다 이구동성 감탄사를 쏟아 낸다. 건물주도 관람자도.

인간의 감각기관과 신체조직은 외부의 환경을 받아들이는 주요 수용기이다. 그러면서 운동계와 공조해 다양한 활동을 하게 해준다. 지각하고 반응하고 활동으로 이어지는 것은 인간의 다감각적 본성이다. 모조품과 진짜의 차이, `진짜'를 접해야만 해당 자극에 반응하고 긍정적 효과를 얻는다. 리얼리티가 아닌 리얼이다.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미디어나 환경에서 얻어진 실험결과다. 그런데 모조품을 보고 감탄하는 인간들은 어떤 인간인지? 무엇에 감탄하는 건지? 그렇게 길들여진 건지?

인간들만의 도시에서 온전한 자연을 재현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자연과 닮은꼴을 만들고 자연인양 여긴다. 자전적 기억은 공간과 함께 저장된다. 인간은 자연 일부이기에 자연의 공간을 기억하는 것이 당연한데 너무나 멀리와 그 공간을 전혀 기억 못 하게 된 것은 아닐까? 그나마 자연을 녹아내기 위해 조경을 디자인하고 건물에는 자연을 접하는 대안적 효과를 위해 자연의 재료를 사용해 조성하고 효율적 채광, 자연환기를 위한 기본적인 설계 수준. 자연과의 접촉이 중요하다는 인식의 반영이다. 자연과 주기적으로 접촉하면 범죄율과 스트레스가 낮아진다는 믿음도 그 중 하나다.

하늘이 높은 한낮의 지상은 높디높은 빌딩과 연일 붐비는 자동차, 끊임없이 밀려드는 사람들의 부딪힘과 열섬 도심의 매미소리를 방불케 하는 숨죽인 아우성, 잠시나마 도심을 떠나 태초의 자연과 같은 심연의 세상으로 향한다. 깊이를 감지할 수 없지만 어렴풋한 세상, 잠시 눈을 감고 귀를 닫고 내디딘 세상은 이제껏 체험하지 못했던 세상이다. 난 그곳에서 한동안 숨을 쉴 수도 눈을 뜰 수도 없었다. 날숨이 물방울로 변해 미세한 소리라도 날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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