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입장은 없는 교육논쟁
아이들 입장은 없는 교육논쟁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9.11.10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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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지난 9월 뉴욕에서 열린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 연사로 나선 스웨덴의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 당시 그는 기후문제에 소극적인 각국 정상들을 일갈한 후 전 세계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고, 국내에서도 유명인사가 됐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먼저 유엔에 ‘대한민국 아동보고서’를 제출하고 산하기구를 직접 방문해 증언하기도 한 우리나라 10대들은 국내에서도 별 관심을 끌지 못했다.  
지난 2월 스위스 제네바의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에서는 한국 청소년 4명을 초청해 증언을 듣는 행사가 있었다. 이들이 앞서 유엔에 제출한 보고서의 내용을 확인하고 조치를 하기 위한 자리였다. 보고서의 제목은 ‘교육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이었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총 23명의 청소년이 집필에 참여했다. 이들은 2년간 전국에서 1400여명의 아이들들 만나 인터뷰하고 그들이 교육현장에서 겪는 실상을 보고서에 생생하게 담았다.
일류대 합격을 위해 유치원서부터 시작되는 학원 순회, 밤 11시까지 의무화한 야간 자율학습, 국·영·수나 자습으로 대체되는 예체능 시간, 방학 때도 이어지는 ‘텐 투 텐’(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계속해야 하는 공부) 등등 대한민국 다수 학생들이 겪는 지옥 같은 일상이 보고서에 낱낱이 소개됐다. 성적 스트레스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친구의 사연도 실려 있다. 증언을 듣던 아동권리위원회의 한 직원은 동정의 눈물까지 흘렸다고 한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또 교육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교육은 ‘대학입시’와 동의어이기에 대학입시 논쟁이라고 해야겠다. 조국 전 법무장관 임명과 사퇴 과정에서 대학입시의 공정성 문제에 넌더리가 난 대통령은 정시 확대를 공언했다. 1997년부터 시작된 대학 수시전형과 2008년 도입된 학생부종합전형(입학사정관제)은 선진 대입제도에서 돌연 특권이 판을 치는 불공정 제도로 몰려 위축될 처지에 놓였다. 찬반은 엇갈린다. 찬성파는 자사고와 특목고의 스카이(서울·고려·연세대) 독식과 깜깜이 전형을 들어 ‘룰’만이라도 투명하고 공정하게 가자는 입장이다. 반대파는 대학이 다양한 인재와 계층을 선발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 결과적으로 저소득층이 불이익을 겪게 될 것이라며 시계추를 거꾸로 돌리지 말라고 반박한다.
이어 지난 7일 교육부는 ‘고교서열화 해소 및 일반고 역량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오는 2025년까지 자사고와 외고, 국제고 등을 폐지하는 것이 골자다. 전국 단위로 학생을 선발하던 49개 지역 일반고의 특례조치도 폐지한다. 영재학교와 과학고만 유지하되 선발방식은 전면 개선한다. 5년간 2조2000억원을 투입해 일반고의 교육역량을 강화할 방침이다.
그러나 정부의 결단과 그에 호응하는 우호적 여론에서 교육의 한 축인 학생들의 입장은 보이지 않는다. 지금 대입 수험생들은 옥스포드대 졸업생도 풀지 못하는 영어문제, 지문으로 예시된 글의 원작자들도 풀지 못하는 국어문제, 일류대 이공계 교수들도 고전하는 수학문제를 풀기 위해 사투하고 있다. 고단위 사교육은 필수이고 공부 외에는 모든 걸 포기해야 하는 사생결단 없이는 불가능한 신공(神功)을 터득해야 풀 수 있는 문제들이다. 이 고난의 대열에서 낙오한 절대다수의 청춘들은 좌절감을 곱씹으며 목적불명 입시제도의 들러리를 서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뿐인 수험생들을 한 줄로 세우고 평생을 좌우하는 등급을 매기는 대학입시 구조에서 OECD(국제협력개발기구)에서 청소년 행복지수는 꼴찌, 자살률은 1위인 나라가 탄생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정시를 확대하고 자사·특목고를 폐지하는 정책의 전환에는 유엔을 울린 ‘교육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의 호소까지 반영돼야 한다. 행복한 교육이 이뤄지지 못하는 현실에 메스를 대지 못하면, 아이들 입장에서는 배경이 달라진 또 다른 지옥으로의 전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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