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새와 갈대
억새와 갈대
  • 김경수 시조시인
  • 승인 2019.11.07 19: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김경수 시조시인
김경수 시조시인

 

이년 전 여름 폭우가 쏟아졌다. 무심천이 범람할 지경에 이르렀다. 강물은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강가에 이웃들이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늘 토닥거리던 억새와 갈대도 보이지 않았다. 툭하면 큰소리로 다투다가 곁에 없으면 못 살 것 같은 그들은 그런 이웃이었다. 그들이 궁금해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그런 이웃이 또 있었다. 무심천 샛강 사이를 거슬러 오르다 보면 작고 아담한 상점 둘이서 머리를 맞대고 억새와 갈대처럼 몸을 부딪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오늘도 다퉜다. 또 무슨 이유로 다퉜는지 뻔한 것 같았다. 바람이 불었다. 갑석의 상점 앞에 내놓은 쓰레기봉투가 넘어지면서 쓰레기들이 영진의 상점으로 날아들었다. 쓰레기에 깜짝 놀란 영진은 가뜩이나 텅 빈 가게에 바람만 스쳐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날따라 갑석의 상점은 고객들이 붐비는 일로 무척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약이 오른 영진은 갑석에게 당장 쓰레기를 치우라고 쓴소리를 퍼부었다. 갑석의 고객들이 하나둘씩 얼굴을 찡그리며 상점을 빠져나갔다. 갑석도 화가 났지만 남은 고객들로 인해 참았다. 그런데 조금 지나 갑석은 영진에게 화장실 청소를 하지 않았다고 소리를 쳤다. 그나마 겨우 고객이 조금 들었건만 그 사이를 뚫고 갑석의 목소리가 영진의 상점을 울리고 있었다. 이렇게 주고받으며 다투는 일들은 그들 사이에 늘상 있는 일이었다. 그럴 때마다 큰 싸움으로 번져가는 것을 염려하여 주변 사람들에 의해 겨우 싸움을 그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석은 간판을 수리하려고 작업을 하다 사다리가 삐끗하는 바람에 그만 넘어져 다치고 말았다. 막상 일을 겪고 나니 한편으로는 누군가의 작은 도움이 그리웠다. 그 순간 스스로의 원망과 후회가 스쳐갔다. 갑석은 입원하게 되었다. 그 소식을 들은 영진은 깜짝 놀랐지만 태연한 척하였다. 하지만 자신이 도울 수 있었다면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씁쓸한 아쉬움을 지울 수가 없었다. 영진은 문이 닫힌 갑석의 상점을 바라보며 왠지 모를 기분이 우울하였다. 또한 그의 빈자리를 훑고 가는 허전함이 왠지 묘한 느낌이었다. 그도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어쨌거나 그동안 다투었어도 그들이 서로 이웃이라는 것은 이미 분명한 사실이었다. 다음날 영진은 갑석을 찾아갔다. 갑석은 영진을 보자 무척 반가워했다. 그들의 이야기가 샛강을 따라 무심천으로 흘러갔다. 어느새 강물은 수척할 만큼 물이 빠지고 기억 속에 잠겼던 것들이 하나둘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행여나 가슴을 태우며 보이지 않던 억새와 갈대가 서로 어깨를 두드리며 모두에게 손을 흔들었다. 아마도 생사가 걸린 그들만의 여행 속에서 그들은 서로가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시간이라고 짐작했다.
사랑의 대상과 관계에 따라 그 형태가 단순하지는 않겠지만 그중 이웃 간의 사랑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모두의 사랑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삶을 지키기 위해 사소한 일로 다투고 어우러져 스스로를 위해 살아간다. 그러나 미워도 미워할 수 없는 사람, 언제나 그 누구보다 곁에 있는 사람이 바로 이웃일 것이다. 그가 어떠한 사람이라는 것은 스스로 판단할 일이겠지만 각박한 요즘 이웃이라는 존재 가치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닐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