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과 만난 공예
가을과 만난 공예
  • 김현기 여가문화연구소장·박사
  • 승인 2019.11.07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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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여는 창
김현기 여가문화연구소장·박사
김현기 여가문화연구소장·박사

 

모처럼 나선 나들이 마음이 설렌다. 고향마을인 진천군 백곡면 상송으로 돌아온지 6개월 만의 여유로움이다. 가을 햇살이 참 따뜻하다. 정말 좋은 날이다. 30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11번째 공예비엔날레가 열리는 청주 문화제조창이다. 새로 조성한 주차장이 넓어서 너무 편안하다. 문화행사에 참여할때 주차가 제일 힘든데 오늘 시원하게 주차 하니 기분이 더 좋아진다.
가을 한가운데에 우뚝선 문화제조창이 웅장하다. 현대식 건물로 새롭게 탄생한 문화제조창은 현대적인 백화점 같다. 옛 연초제조창을 기억해 내기가 쉽지 않다. 자주 이곳을 방문하던 사람도 이런데 처음오는 사람들은 더 힘들 것 같다. 아쉽다. 청주의 시간 속에 축적된 기억들이 공사장 먼지처럼 사라졌다. 한번 지워진 시간의 흔적을 다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의 시간과 사건을 담고 있는 건물은 존재 자체로 도시의 기록이다. 오랫동안 공들여 만든 문서를 델키 하나로 지워버린 느낌이다.
매회 한번도 빠지지 않고 공예비엔날레를 보아온 내가 만난 2019년 비엔날레의 첫 느낌은 조용함이다. 매회 행사때마다 입구와 광장 마당에 잡다한 천막들이 들어차고 부대행사라는 이름으로 소란스러운 행사가 열리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이번은 조용하다. 단순하다. 아름다움은 조용함과 단순함에서 나온다. 깊어가는 가을이 주는 냄새다. 우리 집 마당의 감나무 같다. 필요없는 잎들을 다 떨구고 감만 매달고 있는 감나무다. 공예비엔날레에는 공예만 있으면 된다. 조용하니 차분해지고 차분해 지니 집중할 수 있다. 감독의 의도가 그러했는지 알수 없지만 나는 이런 분위기가 좋다. 세상 이치가 모두 같다. 중요한 것에 집중해야 맡은 일을 잘 할 수 있다. 공예비엔날레에는 공예가 가장 중요하다. 엉뚱한 것에 힘빼지 않아야 한다. 조용함과 단순함에서 묻어나는 집중의 깊이가 있다.
에스컬레이터가 3층으로 데려다 준다. 가장 중요한 기획전과 초대국가관 공모전을 여기에서 볼 수 있다. 이번 비엔날레는 청주 여러 장소에서 작품을 전시 한다. 고백하지만 다른 곳은 가보지 못했다. 잘 만들어진 공간이라 작품을 관람하기가 편안하다. 사람들도 붐비지 않아 조용히 집중해서 볼 수 있어 좋다.
예술은 실용(實用)이 아니라 무용(無用)이라 생각한다. 예술작품은 무엇인가에 필요해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기쁨을 존재의 감정을 밖으로 들어내기 위해 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술의 결과물을 상품이 아니라 작품이라 하는 것이다. 예술가들의 이러한 무용한 창조적 활동이 자극이 되어 무수히 많은 실용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비엔날레는 무용해야 한다. 무용은 기존의 관념과 가치를 부수어 버린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난다. 틀을 깨 버린다. 이러한 노력들의 결과를 보여 주는 것이 비엔날레다. 그래서 공예비엔날레의 성공은 기존 공예의 틀에서 가능한한 멀리 떨어지는것이다. 관념을 부수고 새로운 방식을 선보인 작품의 수와 질이 얼마나 있는지가 중요하다. 감독은 이러한 생각은 ‘몽유도원’이라고 재미있게 제시했다. 공예라는 미래의 꿈에서 거닐어 보게 한 것이다. 전통적인 공예를 선보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비엔날레는 공예의 새로움을 보여주어야 한다. 공예가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공예의 랩실인 것이다.
사실 나는 공예 문외한이다. 공예뿐이 아니라 미술 전체에도 무지하다. 그러니 내 눈에 비친 비엔날레의 모습을 이야기 하는 것 자체가 편협함 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나의 시각이 시민들의 눈 높이다. 이번 비엔날레는 재료의 파괴가 가장 흥미로웠다. 생각하기 어려운 일상의 재료를 사용하여 작품을 만드는 작가들의 무용함이 놀라웠다. 또한 삶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풀어낸 것을 볼 때 가슴이 뭉클했다. 여인들이 사용한 물건들을 작품으로 표현한 전시관에서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나 제법 긴 시간을 머물렀다. 제일 인상 깊은 작품은 동부창고에서 만났다. 옛 연초제조창에서 나온 온갖 물건들 심지어 먼지까지도 작품으로 만들 수 있는 작가의 상상력이 놀라웠다. 일상의 흔적을 모아 기록하고 이야기로 기억하여 공예로 재창조한 것은 ‘기록문화창의도시 청주’에 아주 적합하다. 
2019년 비엔날레를 생각해 본다. ‘조용함, 단순함, 무용함, 이야기’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20여년간을 키워온 비엔날레가 얻은 결실이다. 공예에 더 집중하고 공예 몽유도원의 새로운 꿈을 계속 보여주는 행사로 나간 것 같아 좋다. 공예비엔날레는 청주가 키운 오랜 문화자산이다. 문화는 자긍심을 준다. 자긍심은 시민들을 행복하게 한다. 눈부시게 멋진 가을에 만나 2019년 공예비엔날레가 나를 행복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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