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속과 접촉에 대하여
접속과 접촉에 대하여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19.11.06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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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우리가 흔히 쓰는 일상 언어 중에는 엇비슷한 것 같지만 의미가 전혀 다른 단어들이 적잖게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말을 배우는 외국인들이 한국어가 어렵다고, 파고들면 들수록 어려운 게 한국어라고 엄살을 부리나 봅니다.
접선과 접속과 접촉도 그 중 하나입니다.
아시다시피 접선(接線)은 어떤 목적을 위하여 비밀리에 만남 또는 그런 관계를 맺음입니다.
간첩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은밀히 약속된 지점에서 만나거나 그들만의 소통방법으로 지령을 주고받는 행위를 접선이라 하듯이.
아처럼 접선은 부정적인 은밀한 만남을 의미할 뿐 별다른 시사점이 없어 논외로 하고 시대적 화두가 되고 있는 접속과 접촉에 대해 일필 하고자 합니다.
아니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접속과 접촉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고자 함입니다.
접속(接續)의 사전적 의미는 서로 맞대어 이음입니다.
서로 다른 업체에서 공급한 여러 장비를 물리적으로 또는 전자회로적으로 연결하는 일을 의미하며 주로 컴퓨터나 인터넷상에서 여러 개의 프로세서와 기억장치 모듈 사이를 물리적으로 또는 전자회로적으로 연결하는 일련의 과정과 행위를 일컫습니다.
우리는 지금 원하는 대상에 접속만 하면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필요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고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고 게임도 하고 노래도 듣는 과히 접속만능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마다 고유한 ID와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하고 비밀번호도 자주 변경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어 노장세대나 기계치와 컴맹들에겐 접속 자체가 고역이고 스트레스가 되기도 합니다.
사이버공간엔 음란하고 퇴폐적인 것도 많고 돈을 노리는 사기성 사이트도 많아 자칫 잘못하면 망조 들 수 있어 옥석을 가려 접속해야 합니다.
그리고 대부분 밀실에서 혼자 한다는 것과 중독성이 심하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홀로 웃고, 홀로 즐기고, 홀로 판단하고, 홀로 슬퍼하고, 홀로 괴로워하는 심지어 자살까지 하는.
접촉(接觸)의 사전적 의미는 서로 맞닿음 또는 가까이 대하고 사귐입니다. 
접촉 사고란 말이 시사하듯 접촉은 신체적 또는 물질적 맞닿음입니다.
노장년층에겐 접촉에 대한 좋은 추억과 향수가 있습니다.
유년시절 집 마당에서, 마을공터에서, 냇가에서, 뒷동산에서 동네 아이들과 날마다 부대끼며 놀았거든요.
어깨동무하고, 술래잡기하고, 씨름하고, 기마전하고, 등말타기하고, 물장구치고.
그렇게 신체적 접촉을 하며 친밀감과 협동심을 함양했고 사회성과 배려심도 고양했지요.
이처럼 접촉의 순기능은 참으로 크고 많습니다.
하지만 접촉의 역기능도 큰 만큼 동의 없는 일방적인 접촉은 삼가야 합니다.
세간에는 순간 잘못된 접촉으로 영어의 몸이 된 이들도 있고, 접촉의 덫에 걸려 패가망신한 이들도 있으니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합니다.
아무튼 접속과 접촉은 소통의 아이콘이자 커뮤니케이션의 통로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필자는 디지털시대를 접속의 시대로, 아날로그시대를 접촉의 시대로 부르며 파생되는 제 현상들에 의미를 부여하곤 합니다.
일 방향 또는 다방향을 지향하는 접속과 쌍방향을 지향하는 접촉에서 많은 시사점을 얻습니다.
요즘 신세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접속엔 강하고 능하지만 접촉에는 어눌하거나 회피하는 경향이 있어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접속에 중독되어 골방에 틀어박혀 있는 그들을 밖으로 불러내서 이웃과 친구는 물론 대자연과 접촉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미래가 있습니다.
잘하면 약이 되고 못하면 독이 되는 접속과 접촉.
하여 접속과 접촉에서 자유로운 접속과 접촉의 달인이기를 빕니다.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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