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손 만드는 호두 겉껍질
검은 손 만드는 호두 겉껍질
  • 우래제 전 중등교사
  • 승인 2019.11.06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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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들려주는 과학 이야기
우래제 전 중등교사
우래제 전 중등교사

 

게으른 농부는 남들보다 모든 일이 한 발짝 늦다. 수십 주 심어 놓은 호두나무에 제법 호두가 달렸다. 남들은 추석 전에 호두를 털어 출하하기 바빴지만 나는 추석이 한참 지나서야 호두를 따기 시작이다.

올해 추석이 일렀기에 그리 늦은 것은 아니지만 벌써 딱따구리라는 놈이 많이 가로채 가버렸다. 사실 애써 호두 털기보다는 비바람에 떨어져 줍는 것이 편하긴 하다. 그러면 겉껍질 까는 수고도 없이 줍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일찍 떨어진 것들은 속껍질이 검어지고 겉껍질 색도 거무스름해져 상품가치가 떨어진다. 그래서 떨어진 것을 줍기보다는 털어서 주우려고 나름 서두른 편이다.

개량 호두는 예전의 토종 호두보다 겉껍질 까기가 쉽다. 잘 여문 호두는 떨어지면서 겉껍질이 부서지기도 하고 나무 지팡이로 툭툭 때리기만 해도 겉껍질이 잘 벗겨진다. 그렇게 겉껍질을 벗겨 주워담기만 해도 검은 손이 돼 버렸다. 그래서 참외 서리 한 것은 숨겨도 호두 서리한 것은 숨길 수 없는 법. 어려서 시골서 큰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일이다.

어떤 성분이 검은 손을 만들었을까?

호두의 잎에는 유글론이라는 성분이 있다. 이 성분은 일종의 천연 제초제 역할을 한다. 솔잎의`갈로타닌' 이나 유칼립투스에서 분비되는 유칼립톨, 뽕나무의 헥산올처럼 자신과 경쟁을 할 수 있는 식물의 발아를 억제하는 역할을 하는 성분이다. 일종의 타감 물질이다. 유글론은 살균작용이 있고 모세혈관의 투과성을 높이는 등 약리작용이 있어 여러 가지 약으로도 사용된다.

호두의 겉껍질에도 알파, 베타-히드로유글론이 함유되어 있다. 이 중 호두겉껍질을 부쉈을 때 알파 히드로유글론이 공기와 접해서 산화하여 유글론이 된다. 이 유글론이 피부를 검게 변하게 한다. 이러한 유글론의 성질 때문에 호두의 겉껍질을 청피라 하여 염색약으로 사용한다.

보통 천연염색은 황토 염색, 노란색을 내는 치자 염색, 빨간색을 내는 소목 염색, 파란색을 내는 쪽 염색, 보라색을 내는 오배자 염색, 갈색을 내는 감염색 등 다양하다. 그리고 이런 재료들을 적당히 배합해 염색하기도 한다. 청피염색은 호두의 겉껍질을 갈거나 발효시켜 염색약을 만들어 사용하는데 섬유에 염색시켰을 때 고동색(초코우유색)을 띠게 된다. 호두 겉껍질로 염색하면 호두 특유의 청아한 향이 은은하게 나서 더욱 좋다고 한다.

가끔은 보고 싶은 사람들 만나야 하는데 검은 손이 부담스럽다. 검은 손을 지우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해 보았지만 효과가 없다. 한 달은 지나야 제대로 돌아올 것 같다.

아직 털어야 할 호두도 남았는데 그냥 시간이 흐르길 기다리는 수밖에.

이참에 호두겉껍질 천연염색에 한번 도전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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