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가 사랑하는 방법
영미가 사랑하는 방법
  • 정명숙 수필가
  • 승인 2019.11.05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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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정명숙 수필가
정명숙 수필가

 

출발시간을 기다리면서부터 수상했다. 틈만 나면 누군가에게 전화통화로 시시콜콜 보고를 한다. 남편이다. 처음엔 부부의 단물 배인 대화에 어리둥절해지고 그동안 우리가 속았다는 생각에 얄미워지기 시작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친구들이 그녀를 향해 한마디씩 쏘아댄다.
영미는 친구들과 떠나는 여행을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어찌나 남편 말을 잘 듣는지 가지 말라고 하면 이유를 달지 않고 주저앉았다. 이젠 시부모님도 안 계시니 자유롭게 다녀도 되지 않느냐고 하면 남편 식사 때문에 갈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던 그녀가 처음으로 남편의 허락을 받고 집을 떠났다. 오랜 친구들과 가는 2박3일의 제주도 여행이다.
처녀 적에 만난 영미는 날씬하지도 않았고 세련되지도 않았다. 맏며느리 감으로 딱 어울릴 것 같은 몸매와 착하고 푸근한 인상이었다. 그 모습은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멋 부리는 것 하고는 담을 쌓고 살아, 화장한 얼굴은 결혼식 때 보고 최근 딸을 시집보내면서 두 번째 봤다. 매사에 긍정적이라고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한 것도 아니다. 조용한 말 속에 뼈가 들어 있다.
영미는 결혼하면서 시부모를 모시고 살았다. 남편이 둘째아들이었지만 당연하게 생각하고 시집살이를 했다. 시부모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남편은 무조건 부모 편에 서서 아내를 속상하게 만든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다 시부께서 노환으로 먼저 세상을 떠나시고 치매에 걸린 시모로 인해 그녀는 초죽음이 되었다. 시설에 입원시키지 않고 집에서 병수발을 하는 아내의 고초를 알면서도 남편은 그야말로 남의 편인 듯 나 몰라라 했다. 힘들어하는 아내를 외면하는 인정머리 없는 친구의 남편을 얼마나 미워했던가. 모임 날이면 한 달 동안 속상했던 일을 모두 털어놓으라고 우선권을 부여하면서 속마음은 헤아리지 않고 할 말도 못하고 산다며 나무라고 남편과 시모를 성토했었다. 그리고 헤어질 때는 참고 살다 보면 좋은 날이 있을 거라는 주제넘은 위로를 했었다. 그랬던 우리에게 제주도에 도착한 날, 저녁식사자리에서 보기 좋게 한 방을 제대로 날린다. 남편이 용돈을 넉넉하게 주면서 했다는 말이 기가 막혔다. ‘차 조심해라. 음식은 급하게 먹지 말고 천천히 꼭꼭 씹어 먹어야 한다. 잘 때는 감기에 걸리지 않게 이불 잘 덮고 자라, 등등. 마치 어린 자식에게 하듯 당부하더란다. 그 말에 감격한 것이라 여겼다. 살뜰하게 챙기는 남편 덕분에 그간의 고단했던 일들은 잊고 꽃길을 걸어가듯 행복해 하는 거라는 생각은 오산이었다. 영미부부는 오래전부터 다정했었다.
그녀는 한 남자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효자인 남자를 위해 그의 부모를 함께 위하며 참고 견뎠다. 묵묵하게 살아온 그녀의 뿌리 깊은 삶이 왜 그리 부러웠을까. 사랑하는 것은 초월과 의지라고 하던가.
그녀는 지금 달콤한 신혼이다. 그러지 못하는 우리가 좋으면서도 약이 올라 전화 통화하는 것만 보면 눈을 흘기고 훼방을 놓아도 영미는 젊은 새댁처럼 얼굴만 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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