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부살이
더부살이
  • 임현택 수필가
  • 승인 2019.11.04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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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임현택 수필가
임현택 수필가

 

서로 마주 보아야 열매가 맺히는 은행나무. 천년세월을 묵묵히 서 있는 압각수, 중앙공원에 가면 유달리 은행나무가 많다. 본시 은행나무는 유교관계 학교 및 단체의 상징으로 은행잎을 도안화를 했다고 한다. 공자가 은행나무 그늘 아래 향단에서 제자들을 가르쳤기 때문에 공자를 모시는 뜰에는 은행나무를 심었다. 뿐인가 자식이 없으면 치성을 드려서 자식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신목(神木)이기도 하다.

공원 내 밑동이 그리 굵지 않은 은행나무가 있다. 은행나무 중간에 더부살이하듯 또 다른 나무인 자작나무가 기다란 가지를 뻗어 은행나무의 가지만큼 커다랗게 자라고 있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뺀다고 나뭇가지 중간에 자리 잡은 것이 실하게도 자라 길쭉길쭉한 열매도 달아놓았다. 이파리 색깔도 은행나무와 흡사해 얼핏 보면 잘 알아보지도 못하는데, 기생 살이 나무가 어찌 저리도 당당하게 자라고 있는지 염치도 없다.

은행나무와 비슷한 삶을 영위한 한 많은 어르신이 계셨다. 머리에 비녀를 꽂고 한복을 입던 시절, 마을 어르신들은 그분을 자손 없는 할머니라 했고, 그 집안에서는 손 없는 할머니라 통했다. 손 없는 할머니의 젊은 날, 현모양처의 며느리로 뿌리 깊은 은행나무처럼 조강지처로서 극진히 시부모를 공양했다. 허나 무슨 변고인지 칠출 중의 하나, 대를 잇지 못하고 있었다.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려 모진 풍파에도 튼튼하게 자란 은행나무는 결실을 잘도 거두는데, 조강지처는 후사를 이를 자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달의 정기를 마시며 치성을 올리기도 수십 해, 수태를 위해서 곳곳에 아이를 점지해주는 바위를 수없이 갈아 마셨다. 뿐인가 아이를 많이 낳은 집 아낙의 고쟁이 입기는 물론 후사를 위해서 무엇인들 안 해 봤을까마는 나날이 칠출(七出)로 고초를 겪고 있었다.

끝내 시 어르신들은 대를 이을 후처를 사랑채에 들였다. 더부살이 같은 삶의 서막, 기구한 두 여인의 운명의 시작이었다. 마치 은행나무 중간에 씨앗이 비집고 들어와 자리를 틀고 제집 인냥 당당하게 자라는 것처럼 담대하게 사랑채에 기거했다. 야속한 삼신할머니는 끝내 안채엔 점지해주지 않고, 사랑채에서는 몇 해 동안 계속 이어 아기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고, 대를 이를 몇 명의 아이들의 소리가 집안 곳곳에서 넘쳐났다. 발에 짓밟혀 으깨진 은행에서 고약한 악취가 널리 퍼져 사람들에게 괴로운 고통인 것처럼, 안채에서는 수없는 고통 속에 머리를 조아리며 시커멓게 타들어 가는 속을 얼마나 달래고 달래셨을까. 마치 쪼글쪼글 딱딱하게 말라버린 은행처럼 쭈글쭈글 응어리진 가슴은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을게다.

늘 살얼음 위를 걷는 안채의 삶, 혹여나 무심코 든지 말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돌아오지 않을까, 시기와 질투는 물론 눈빛조차도 표하지 못하고 세월을 꾹꾹 억누르며 지냈을 생채기 같은 시간들. 막막한 나날은 맹지 위에서 나락으로 떨어지듯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듯 고통스러운 삶이었다. 그럼에도, 단단한 껍질 속에 실한 열매를 품은 은행처럼 고달픈 삶은 은행껍질처럼 삶의 두께가 두꺼워지면서 흔들릴 염려 없이 아주 미덥게 굳어졌다. 공원의 은행나무가 더부살이하는 나무를 품고 있듯 그렇게 세월을 품은 손 없는 할머니다.

유치환의 `행복'이라는 시에서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라고 했다. 안채와 사랑채 담 하나 사이로 얼마나 깊고 깊은 애증의 강물이 흘렀을까. 냉가슴 앓듯 퍼렇게 멍든 것처럼 푸르던 이파리가 농익은 삶처럼 누렇게 익어가는 은행나무, 더부살이 나무는 봄이면 은행나무와 함께 새순이 돋고 가을이면 똑같이 단풍이 들면서 세월을 먹고 있다. 더없이 청정해 보이는 이 가을, 아프면 아픈 만큼, 슬프면 슬픈 만큼 사셨을 손 없는 할머니의 애증을 가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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