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당과 청렴 사이에서
경로당과 청렴 사이에서
  • 유은영 청주시 흥덕구 주민복지과 주무관
  • 승인 2019.11.03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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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유은영 청주시 흥덕구 주민복지과 주무관
유은영 청주시 흥덕구 주민복지과 주무관

 

경로당은 지역 노인들이 자율적으로 친목 도모·취미활동·공동작업장 운영 및 각종 정보교환과 기타 여가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장소를 제공함을 목적으로 하는 노인여가 복지시설 중 하나다. 노인여가 복지시설 설치 신고를 통해 시설 및 설비 기준, 회원 20명 이상 등 요건에 적합하면 시·군·구청장이 수리해 경로당을 운영할 수 있다. 대부분 경로당 회원은 20~30명이며 폭염에는 무더위 쉼터로 이용돼 인원이 증가하거나 감소하기도 한다.
경로당 어르신을 대상으로 대한노인회지회 9988행복나누미 사업,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백세 운동교실, 보건소 치매선별검사, 대한안마사협회 안마서비스 사업, 각종 안전교육 등이 진행된다.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곳이다 보니 요구 사항도 많다. 김치냉장고, 소파, 청소기, 전자레인지, 정수기, 운동기구 등 물품 구입부터 경로당을 신축해 달라는 민원도 끊이지 않는다. 마음 같아서는 다 해드리고 싶은데 경로당 수는 많고 기준과 지침이 있으니 안 된다는 답변을 해야 할 때면 입도 잘 떨어지지 않는다. 
청주시 전체 경로당 수는 1050곳이며, ‘청주시 경로당 운영 지원 조례’에 따라 경로당 시설의 신축·개축, 보수 등 기능보강사업비, 운영비와 난방비 등을 지원한다.    
예산 편성 시기에는 개보수가 필요하거나 물품 지원이 필요한 곳을 조사하며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다. 흥덕구 경로당 276곳을 관리하다 보면 경로당마다 고쳐 달라, 바꿔 달라 하는 요청이 빗발친다. 
한정된 예산 안에서 우선순위에 따라 사업을 선정하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다. 예산을 편성할 때는 사업 타당성, 기대 효과를 검토해야 하는데 사람 사는 세상이 다 그렇듯 우리 경로당이 우선이라며 먼저 해달라고 말씀하신다. 안 해주면 높으신 분 찾아간다는 어르신도 계시니, 웃지 못할 일이다.
지난 가을, A 경로당을 방문했을 때이다. 늦은 오후에도 경로당을 이용하는 어르신은 많았고 시설은 많이 낡아 있었다. 싱크대 교체 사업비를 너무 적게 요청해 확인하기 위해 나왔다고 하니 총무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렴한 싱크대도 괜찮다. 내 돈 아니라고, 생색내려고 비싼 싱크대를 할 필요 뭐 있어? 나랏돈 함부로 쓰는 거 아니여.”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구연한만 지나면, 조금만 불편하면 바꿔달라고 아우성인데 이렇게 청렴한 분이 계시구나.’
며칠 전 다시 그 경로당에 갔는데, 싱크대는 있는데 가스레인지가 바닥에 놓여 있었다. 여쭤보니 가스레인지가 고장이 나서 수리해 가지고 오셨단다. 새로 사자고 권하자 총무님은 “고쳐서 쓰면 되지, 아깝잖아.” 그러신다.
나는 부끄러웠다. 언제부터인가 물질에 풍족해져서 조금만 낡아도 새로 사고 싶은 욕심들이 생겼는데, 어르신은 작은 것 하나라도 그냥 내버리는 법이 없다. 그것이 내 것이 아니고 공용으로 쓰는 물건인데도 아끼신다.
청렴, 청렴 말로만 하지 행동으로 실천하기는 참 어렵다. 직장에서 계속 청렴을 외쳐대도 청렴이 습관이 되기까지는 아직 멀었다.
우리가 쓰는 예산은 결국 우리가 낸 세금이다. 청렴에 있어 중요한 건 마음이다. 남의 것도 내 것처럼 소중히 아끼는 마음, 그것이 청렴의 기본이지 않을까 싶다. 오늘도 나만의 청렴 메시지를 경로당 업무에 적용해 본다.
의견은 경청하고 판단은 공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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