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년을 이어온 나라 위한 마음, 영국사
천 년을 이어온 나라 위한 마음, 영국사
  • 윤나영 충북도문화재연구원 문화재활용실장
  • 승인 2019.10.30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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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윤나영 충북도문화재연구원 문화재활용실장
윤나영 충북도문화재연구원 문화재활용실장

 

바야흐로 단풍의 계절이다. 자연의 어머니가 온갖 알록달록 물감들로 팔레트를 가득 채워 산줄기마다 붓 터치하는 그런 계절이다. 충북에는 명산이 참 많다. 이번 가을 여러분은 어디를 다녀오셨는지, 혹은 가보실 생각이신지? 세계유산 법주사를 품은 속리산, 기암절벽과 맑은 물과 어우러지는 월악산, 그도 아니라면 가까이 산성 둘레길이 매력적인 상당산, 모두 다 매력적인 장소이지만 이맘때 꼭 가봐야 하는 곳이 있다. 영동 양산면에 있는 천태산, 그리고 그 안에 보석처럼 숨겨져 있는 천 년의 고찰 영국사이다.

이맘때 영국사를 방문해야 하는 이유는 일 년 중, 단 며칠 화려한 자태를 드러내는 그분이 있기 때문이다. 주차장부터 20여 분 정도 산길을 올라 영국사 일주문을 들어서면 그야말로 장관이 펼쳐진다. 세상 노란빛을 모두 쓸어담아 몸에 두른 듯한 커다란 은행나무가 찬란한 모습을 뽐내며 눈앞을 가득 채운다. 30여 미터에 달하는 이 커다란 나무는 천 년이 넘는 세월동안 이 자리에 서서 영국사를 지켜왔다.

영국사, 이름 그대로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는 사찰이다. 1361년, 원나라 홍건적이 고려를 침략하여 파죽지세로 남하하자, 공민왕은 결국 수도인 개경을 버리고 남쪽으로 피난길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먼 길을 지나 이곳 영동 마니산성에 도착했을 때에도 전황은 고려에 불리한 소식뿐이었다. 전쟁의 고난 속에 괴로워할 백성과 외적의 발아래 짓밟힐 국토 생각에 괴로워하던 공민왕에게 누군가 권하였다. 근방에 국청사라는 명찰이 있으니, 이곳에서 부처님께 국운을 빌어보시는 것이 어떻겠냐고. 그 말을 듣고 공민왕은 영국사를 찾아 나라의 무사안녕을 빌었고, 그 후 나라의 평안을 비는 사찰이라 하여 “영국사”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공민왕이 이곳을 찾은 것이 근 700여년 전이니, 이 나무는 공민왕의 행차도 지켜보았을 것이다. 국난 속 간절한 마음으로 이곳을 찾은 한 나라의 군주를 은행나무는 어떤 마음으로 내려다보았을까?

영국사가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명확지 않다. 1879년 기록인 「영국사 사적문」에 따르면 신라 법흥왕 때 신라왕자 원각국사가 지었다고 하지만, 이는 후대에 붙여진 전설로 보인다. 다만 통일신라 때 지어진 삼층석탑이 여전히 경내에 남아있고, 발굴조사에서도 통일신라 시기 불상과 기와 등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늦어도 통일신라 하대인 8~9세기에는 영국사의 역사가 시작되었고, 12세기 왕의 스승이었던 원각국사 덕소가 머무르면서 명찰로 전국에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이후 천 년의 시간 동안 영국사는 6차례의 중창을 거듭하며 현재에 이르렀고, 그 역사의 흔적은 많은 문화재로 남아있다. 현재 영국사 내 위치한 보물만 4건이요, 서울 불교중앙박물관에서 보관 중인 영산회후불탱까지 하면 모두 5점의 보물이 영국사와 관련이 있다. 또한, 시도지정문화재가 4건, 그 외 불화, 동종 등등 비지정 문화재도 다수이다. 그뿐만 아니라 발굴조사에서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팔각원당형 소조탑이나 백자 연봉, 청기와 등이 출토되어 지난 세월동안 쌓아온 영국사의 위용을 엿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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