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아트 작가로 산다는것은
미디어아트 작가로 산다는것은
  • 티안 라폼므현대미술관 미디어아트작가
  • 승인 2019.10.30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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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티안 라폼므현대미술관 미디어아트작가
티안 라폼므현대미술관 미디어아트작가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쯤 모네는 자연의 순간을 보고 느끼는 그대로를 화폭에 담은 인상파 화가였다.

그리고 인상파 작곡가 드뷔시 역시 떠돌아다니는 음표들을 한곳에 모아 음악을 만들었다. `순간을 담은' 모네와 `순간의 느낌을' 음악으로 담는 드뷔시는 둘 다 기존 형식을 버리고 많은 비난을 받으면서도 자신들의 감정을 예술로 충실하게 표현했다.

또한 당시 프랑스 작곡가 에릭사티의 `벡사시옹(Vexations, 짜증)'의 악보는 생전에 출판되지는 않았다. 이 곡 하나만으로도 사티는 당대의 이단아란 것을 증명한다. 한 장의 악보 아래에 지시가 적혀있는데 이 악보를 840번 반복하라는 것이다. 연주자마다 다를 수밖에 없겠으나 대략 14~18시간이 걸린다.

이 곡은 존 케이지가는 1963년에 초연을 하였으며 11명의 피아니스트가 교대로 연주했다. 관객이 잠들어버리거나 들락날락하는 동안 끝까지 남아있는 관객이 있었다. 바로 `앤디 워홀'이다.

에릭 사티는 시대를 잘못 태어난 것일까, 아니면 그 시기에 태어났기에 이런 모습으로 남은 것일까.

그가 남긴 한마디는 “나는 너무 늙은 세상에 너무 젊어서 왔다”였다. 그리고 약 100년이 지난 지금, 미디어아트 작가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생각해 봤다. 과거 인상파가 출연했을 때도 처음에는 극심한 저항과 반대가 있었으며 그것을 이해 못 했지만 지금은 모두에게 익숙하고 정서적으로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

미디어아트가 이와 같은 길을 가지 않을까?

아날로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은 미디어아트에 공감하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인기직종이 된 디지털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들은 미디어아트를 자신들의 예술로 여기고 있다.

미디어아트는 단순히 예술에 대한 문제라고 할 수 없다. 4차산업혁명시대,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시대를 거쳐 새로운 예술 장르로 자리 잡은 미디어아트는 물감의 자리에 디지털 코드가, 캔버스 대신 디스플레이어나 프로젝션에 작가의 사상을 구현한다.

과학과 예술의 융복합 과정을 통해 미디어아트는 작품 안에서 새로운 시공간을 창조할 수 있으며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들이 자신만의 수천, 수만가지의 모습으로 해석하고 완결할 수 있다.

지금 같은 디지털복제의 시대에 예술은 한 작가의 같은 작품을 두 곳에서 전시할 수 있으며 같은 작품을 보지만 관람객에 따라 전혀 다른 두 작품이 생성된다.

기존 예술 작품이 작가에 따라 의미만 변화된다면 미디어아트는 관람객 참여에 따라 실제 그 형태가 변화된다는 점에서 매우 다른 의미를 갖는다. 새로운 시도를 하는 만큼 기존 관습에서 좀 더 자유로운 사고가 필요하다. 이렇게 미디어아트는 전통과 혁신 그 어디쯤을 지나고 있는 중이다.

필자를 비롯해 많은 예술가들은 특히 미디어아트 작가로 생존해 가는 것은 쉽지 않다.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 생각하고 예술 재능을 기부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작품을 통해 사회를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사회 속에 본인들은 챙기지 못한다.

미디어아트 작가로서 나는 “미래에서 온 작가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와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다가올 세대를 위한 예술작업을 하는 사람이다”. 지금은 그것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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