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가을은
  • 김용례 수필가
  • 승인 2019.10.29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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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용례 수필가
김용례 수필가

 

볕이 따갑다. 이 따가운 볕이 언제까지 머물러 줄 것인가. 일을 하고 있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하루하루 몸이 단다. 정진규 시인의 놀고 있는 햇볕이 아깝다는 말을 알겠다. 우리 마당의 햇볕은 구절초를 예쁘게 피워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을 감탄시켰다. 지금은 국화에 정성을 쏟고 있다. 국화가 더없이 예쁜 꽃잎을 피우고 있다.
오늘은 들깨를 털었다. 들깨 단을 만질 때마다 들깨 냄새가 좋다. 향기롭고 맑은 가을 냄새다. 옆집 아저씨에게 도리깨질을 배웠다. 들깨를 터는 방법부터 마무리까지 강의를 듣고 가벼운 마음으로 밭으로 갔다. 터는 것까지는 잘했다. 검불을 바람에 날리는 일이 난감하다. 고 작고 가벼운 들깨를 가리는 일이 쉽지 않았다. 반은 버리는 것 같아 아까워서 나는 자꾸만 다시 하자하고 남편은 조금 덜 먹자며 쉽게 하자고 한다. 알곡을 버린다는 게 마음이 불편하다. 옥신각신 끝에 대충 마무리를 하여 자루에 담았다. 들깨 자루가 제법 묵직하다. 힘들었던 마음은 사라지고 기름을 짜서 나눠 먹어야지 하는 마음이 앞선다.
밭 한쪽에 심어놓은 무도 제법 몸집을 키웠다. 무를 쑥 뽑아 손으로 껍질을 벗겨 우적우적 먹었다. 슈퍼마켓에서 사먹는 것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농사가 어둑하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생각난다. 씨앗 몇 개 땅에 묻었는데 이렇게 큰 기쁨으로 온다. 흙이 이렇게 위대한 것을 농사를 지으면서 실감한다. 작은 씨앗을 흙에 묻으면 어찌 그리 잘 키워내는지 경이롭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땅은 어머니라 하나보다. 무슨 씨앗이든 품기만 하면 키워낸다. 흙과 식물을 통해 선량한 삶을 배운다. 그에 맞는 맛과 향을 그에 걸 맞는 색깔과 크기로 키워내는 땅의 절제와 힘에 절로 고개 숙여진다.
가을엔 감사 기도가 많아진다. 걸음이 불편한 어머니, 아버지께 단풍구경을 시켜 드릴 수 있어 감사하다. 농사지어 수확한 고구마가 넉넉하여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어 감사하고, 좋은 사람들과 가을여행이라는 이름으로 떠날 수 있는 것 또한 감사한 일이다. 감사하는 마음이 많을수록 세상에 대하여, 내 삶에 불만이 적어진다.
마당에는 가을향기로 가득 차있다. 구절초 꽃 지고 난 자리 국화꽃이 크게 웃고 있다. 바람이 조금씩 차가워질수록 국화꽃은 더 환하게 웃는다. 머지않아 사그라질 것을 알고 더 맑게 웃어주고 더 진한 향기를 내는 것 같아 가슴이 서늘하다. 사람도 때를 알면 더 아름답고 진한 향기를 내야 한다. 헌데 나를 보면 마음으로는 웃자, 모서리를 깎아 내자, 생각은 깊게 행동은 선하게 해야지 하면서도 안에서는 왜 아직도 가시를 성성하게 세우고 있는지 모르겠다. 산골에 살면서도 꽃만 좋아할 줄 알지 꽃의 속마음은 모르는 것 같다. 지나온 날들을 잘 참고 살아온 것들은 고운 빛으로 물 들을 것이다.
짧아지는 하루해가 안타깝기만 하다. 나는 이 따가운 가을 햇볕과 오랫동안 놀고 싶다. 가을은 세상의 모든 평안을 기원하는 맑은 기도, 좋은 사람과 함께 읽고 싶은 한 권의 책, 한 편의 영화. 풍경 좋은 카페에서 한 모금 남은 커피를 마시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야 할 안타까운 시간 같다. 가을은 살아온 날들을 자꾸만 뒤돌아보게 한다. 가을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안다. 이 좋은 계절 가을은 내 속도 모르는 채 속절없이 가고 있다. 곧 11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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