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원
식물, 원
  •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비엔날레팀장
  • 승인 2019.10.29 17: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주알 고주알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비엔날레팀장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비엔날레팀장

 

꽃을 피우는 시기를 달리하며 사계절 새로운 색과 모습으로 가득한 화단, 꽃이 지고 열매를 기다리는 것에 대한 로망, 도시에 사는 모든 이들이 품을 만한 현실 속 바람이다.
경제여건 때문만은 아니더라도 생활의 생활방식의 습관, 선호도에 따라 아파트를 고집하면서도 언젠가는 조그마한 텃밭과 꽃밭이 있는 자그마한 마당에서 살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다.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면서 차 한 잔 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서. 그러나 주거의 많은 부분이 아파트 중심인 현대에 그저 바람일 뿐, 많은 사람은 들로 산으로, 가까운 공원으로, 수목원을 찾아 나간다. 꼭 주말이 아니더라도 시간을 내어서라도 나가는 추세이다. 좀 더 그럴싸한 곳을 찾아서. 얼마 전 오래전부터 갈망하던 끝에 국내의 유명한 정원을 찾았다. 그간 많은 홍보로 접하기만 하고 멀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던 곳이었기에, 그것도 국가정원이란 타이틀을 달고 있기에 어느 곳보다 기대감이 컸다. 기대감이 커서였을까 쉼 없이 구석구석 돌아보고 돌아오는 길은 허무함으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이상이었다.
주제별 정원을 만들어 놓고 설명은 그럴싸했다. 나라마다 특색 있는 전통양식과 멋을 자랑하는 정원, 외국에 가지 않고도 각국의 문화와 전통이 녹아든 전통 정원인 11개의 세계정원, 그러나 일본정원을 재현해 놓았다는 곳은 고치현과 사가현의 온난다우한 기후에서 볼 수 있는 수종, 이끼, 물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고 배치도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나라별 수종이 다 같고 형태만 그럴싸하게. 대다수의 정원 울타리는 꽃댕강나무, 반그늘에서 잘 자라는 수국은 직사광선 아래서 잎이 다 타들어 흉물이 되었고, 다육식물과 수생식물은 같은 곳에 심었다. 다른 곳에서 키워 자주 바꿔 준다는 말이 너무나 거슬렸다. 과연 식물을 위한 정원인지 관리인원 고용과 끊임없이 조달, 식재되는 식물이 쓰레기가 되어 버려지는 광활한 공원인지. 포토존이라 하면서 어울리지 않는 공간에 설치된 조형물에 어찌나 번지르르하게 설명이 되던지. 주객이 뒤바뀐, 그간 내가 찾고 싶었던 정원의 실제모습이었다.
요즘은 환경과 공간에 대한 관심 덕분인지 라이프스타일트랜드에 맞춰 플랜테리어, 그린메이트(반려식물)란 말이 익숙해져 있다. 그러다 보니 사무실의 자그마한 공간에도 아파트의 자투리 실내공간에 나만의 정원을 만들게 된다. 가꾸는 일이 즐거움이 되는 공간이다.
정원은 공원과는 달리 개인적인 성향이 반영된다. 공원은 많은 사람이 쉬고 즐기는 곳이지만 정원은 가꾸는 곳이다. 가꾼다는 것은 대상을 이해하지 못하면 힘든 일이 된다. 식물을 알고 이해하며, 제자리를 찾아 식재되면 그 자리에서 씨가 떨어져 자연스레 자기 자리가 되는 것이다. 조건을 찾아 자리 잡았기에 이식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 어쩌면 방치해 놓은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다. 와일드가든 이다. 시설물이나 조형물이 아닌 식물이 주인공이고 적재적소에 자연스레 생존조건을 만들어가는 식물들의 터이다. 그러기에 정원은 완결이 아닌 진행형이다. 꽃을 보겠다고 핀 꽃을 옮겨다 심고 시들면 이내 버리고, 조건도 안 맞는 수종을 심고는 적응하라고 윽박지르는 것이 정원이 아니다.
정원의 기본 개념을 모른다 하더라도 정원을 대하는 마음만이라도 있다면, 식물을 이해하고 아끼는 마음만 있다면 자신만의 소중한 정원을 만들고 즐길 자격이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원 가꾸는 것을 즐기는 문화로 무르익는 것이다. 새로 일어나게 하는 치유의 힘을 마음으로 느끼고 몸이 반응하는 것을 알기에 가능한 것이다.
남들은 다 좋다고 평하는데 왜 그리 삐딱하게 이야기하는 것이냐 라고 묻는다면, 무엇이든 기본개념이 있고 정체성이 있고 방향이 있는데, 애정도 없이 실제와 다른 설명으로 사람들을 현혹하는 것이 못마땅해 그러는 것이고, 제대로 된 방향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라 그렇습니다. 라고 말하고 싶다. 정원은 식물을 위한 ‘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