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치마을에서
행치마을에서
  • 이명순 수필가
  • 승인 2019.10.28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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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명순 음성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한국어 강사
이명순 수필가

 

행치마을에 갔다. 보덕산 품 안에 자리하고 있는 반기문 평화랜드다. 파란 가을 하늘 아래 넓은 잔디밭에서 반기문 백일장이 열리는 날이다. 초, 중, 고등부와 대학 일반부는 운문과 산문으로 나눠서 정해진 글제에 따라 글을 써야 한다. 다문화 외국인부는 산문 글제만 주어졌다.
많은 인원이 참석해야 좋겠기에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의 참여를 독려했다. 명절 후라 회사가 바쁘다고 참석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아 아쉬웠지만 그래도 다문화센터와 외국인노동자센터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이 참여하여 <나의 꿈>이란 글제를 가지고 열심히 썼다. 모국어로 써도 힘든 게 백일장이다. 그들에게는 외국어인 한국어로 정해진 시간 속에서 자신들의 꿈에 대해 열심히 글을 쓰는 모습이 대견했다.
가을이지만 한낮의 햇볕은 뜨거웠다. 가끔씩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를 식히며 옹기종기 모여 앉아 글을 쓰고 있는 모습에 뿌듯해진다. 한국어 자모음을 배울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 사이 한국어로 자신들의 꿈을 쓸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 어휘력도 풍부해졌고 문장의 연결도 매끄러워 놀랍다. 무엇보다 앞으로 한국에서 자신의 꿈을 이루고 싶다거나 고국에 돌아가서 한국 생활의 체험을 바탕으로 더 멋진 자신의 꿈을 이루고 싶다는 그들의 꿈에서 감동이 전해졌다.
모두가 박수를 받고 상을 받아도 좋을 만큼 열심히 썼다. 그래도 수상자 발표는 언제나 희비가 엇갈리는 순간이다. 수상자에게는 당연히 축하의 박수를 보냈지만 아쉬운 탈락자들에게 더 마음이 간다. 백일장은 순발력도 있어야 하고 글제도 내 생각과 맞아야 하기에 운도 따른다고 말했다. 올해는 한국어 글쓰기 연습이라고 생각하고 내년에 다시 한 번 도전해 보자고 격려하지만 아쉬워하는 그들의 표정에 내 마음도 잠시 그늘이 진다.
다문화, 외국인부 심사 선생님은 심사평을 통해 이 세상에서 제일 가난한 사람은 꿈이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꿈이 없다면 우리네 삶이 얼마나 퍽퍽할까. 그 퍽퍽한 삶에 생기를 넣어 줄 수 있는 게 바로 꿈이다. 오늘 백일장에 참가한 외국인노동자나 결혼이주여성들은 큰 꿈을 가지고 한국에 왔다. 그들은 한국에 살면서 더 큰 꿈을 꾸기도 하고 새로운 꿈도 생겼다고 한다. 한국어를 열심히 배워 고향에서 한국어 선생님이 되겠다는 꿈도 있고, 통번역사로 일하고 싶은 꿈도 많았다. 자녀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로 성장하고 싶다고도 했다.
글을 쓰는 그들을 보며 나도 잠시 나의 꿈은 무엇이었나 생각해 봤다. 젊은 시절에는 분명 많은 꿈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꿈을 잃고 살아왔다. 50대 이후로는 내 삶이 여유롭기를 꿈꿨는데 사는 것만 급급해서 삶의 여유를 느낄 틈도 없이 살아간다. 자연 속에 앉아 있으니 앞으로의 꿈보다는 내가 무심하게 놓아버린 것들이 떠올랐다. 꿈은 계속 바뀔 수 있고 살다 보면 새로운 꿈들이 생겨나기도 한다. 백 세 시대라는데 그렇다면 남은 세월도 살아온 만큼 더 살아야 한다. 남은 세월을 어떻게 살아야 잘 살았다 말할 수 있을까. 꿈이 없다면 의미 없는 노년이 될 것이다. 나도 새로운 꿈을 꾸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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