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로부터 온 통보
가을로부터 온 통보
  • 이재정 수필가
  • 승인 2019.10.23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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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이재정 수필가
이재정 수필가

 

지금, 들판은 가을 향연 중이다. 저마다 색색의 실타래를 풀어내느라 바쁘다. 나무에 매달려 영글어가는 사과는 더 붉어지고 풀들은 색옷을 입는다. 꽃은 꽃대로 빛을 쏘아대어 세상이 환하다. 사람들도 스르르 꽃놀음에 빠진다. 시간을 잊은 채 기분이 풍선을 타고 올라 호강한다.

꽃은 향기로 벌들을 불러들인다. 구경꾼들은 꽃이 벌이는 춤판을 보러 모여든다. 누구랄 것도 없이 춤사위를 보고 있자면 저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꽃의 유혹을 매몰차게 뿌리치는 이가 있다면 아직 인생의 여름을 보내보지 않은 사람이다. 유난히 꽃이 예뻐 보이는 가을이다.

꽃이, 나뭇잎이 제 색깔을 찾는 동안 햇볕은 여름을 함께했다. 그리고 기다려 주었다. 어느새 물들기 시작한 잎들은 나뭇가지와의 이별을 직감했을 터이다. 아무리 무거운 빗방울에도 억척스럽게 잡고 있던 손을 놓아야 할 때가 왔음을 말이다. 노랗던 논들이 기계에 다 점령당하면 풀들은 소리 없이 스러질 것이다. 떨어진 단풍잎들은 바람에 이리저리 몸을 뒹굴다 사라진다.

절정을 향해 짙어가는 단풍이 눈부셔 오히려 섧다. 순응하느라 점점 더 화려해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처연함이 목울대까지 차오른다. 무심히 넘긴 자연의 섭리가 올해는 왠지 체증처럼 걸려 덧없다. 재재소소(在在所所) 분분한데 나만 멍해 있다. 이 나이가 낯설다.

옆의 친구들을 바라다보니 조금씩 변하고 있다. 어찌 자신의 색을 찾았는지 기웃거려보아도 알 길이 없다. 살다 보니 스스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일러준다. 아직 기미도 보이지 않는 나의 엽록소는 이대로 갈잎으로 말라버릴지도 모른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봄을 정성들여 가꾸지 못했다. 또 여름을 치열하게 견딘 것도 아니다. 그저 중간이면 되리라 생각했다. 남의 눈에 띄지도, 뒤처지지도 않으면 되었다.

삶의 중간은 편했다. 누구의 원망을 들을 필요도 없고 비난받을 일도 없었다. 혼자서 거센 주장으로 힘을 뺄 이유도 없다. 그렇지 않은데도 그런 척 넘어가면 된다. 그저 남들이 가는 대로 휩쓸리면 미움을 사는 일은 없다. 고른 평지의 안주였던 셈이다.

문어는 보호색으로 변신하는 기술이 뛰어나다. 천적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1초 만에 몸의 색깔을 바꾼다. 원래의 자줏빛은 흙바닥에 머물면서 금방 회색이더니 바로 몸 전체가 바닥과 같은 색으로 변한다. 몸속에 있는 색소를 적절히 배합해 위장한다. 주위의 배경과 같아 속임수가 기막히다. 포식자들을 피하기 위한 자신만의 방어술이다.

이제껏 나는 중간이라는 보호색을 덮고 살았다. 괜찮다, 좋다는 말 뒤로 솔직한 나를 숨겼다. 긍정과 부정의 중간점에서 어중간히 서 있었다. 적으로부터 확실히 자신을 지킨 문어이지도 못했다. 이건 나를 보호했던 게 아니다. 단지 나의 색깔을 잃어버리게 했을 뿐이다.

나를 찾아온 가을에게서 통보를 받는다. 머지않은 겨울을 몸으로 기별을 준다. 곳곳에 이상 징후로 신호를 보내는 나의 가을. 올해는 태풍이 유난히 많아서인지 벌써부터 가슴 안으로 겨울바람이 지나간다.

가을이 묻는다. “괜찮아?”한밤의 불빛 없는 사막에 혼자 서 있는 막막함이 온통 나를 에워싸고 있는데. 괜찮을 리가 없다. 생각의 보호색으로 가려졌던 나의 시간이 후회로 남는다.

한줄기 찬바람이 분다. 앞서 물든 나뭇잎이 후드득 떨어진다. 가을이 나에게 보내는 마지막 통첩인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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