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을 굽는 새벽
삼겹살을 굽는 새벽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9.10.22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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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청주시 복대동과 봉명동, 우암동 일대에는 새벽에도 삼겹살을 굽는 음식점이 성업 중입니다.

지금은 기억도 희미하지만 야간 통행금지가 없던 내륙도의 특성에 따라 성행했던 야식집에서 이루어지는 세태이거나, 24시간 영업하는 식당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산업단지 부근이거나, 월셋집의 조건에도 못 미치는 일용노동자들의 달방이 몰려 있는 이들 동네의 새벽 삼겹살 굽는 냄새는 말 그대로 밑바닥 인생의 마지못한 해방구가 되어 세상을 자극하는 쓰라린 흔적입니다.

물론 이런 식당에도 밤새워 술과 함께 토론하거나, 술에 취해 맨정신으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젊음과 실직, 미취업의 고통을 마비시키려는 `꾼'들이 없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새벽부터 삼겹살을 굽는 것은 대부분 철야노동을 마치고 졸음이 가득한 눈을 비벼가며 다시 전쟁 같은 내일을 버티려는 사람들입니다. 밤사이 기계를 멈출 경우 생산성은 떨어지고 에너지 비용은 오히려 늘어나는 기업의 욕망에 따라 하루 3교대 철야노동을 무릅쓰고 공장을 지켜야 하는 삶의 고단함이 새벽공기를 진동하는 삼겹살 굽는 냄새에 속절없이 담겨 있습니다. 편의점이 됐든, 근사한 커피전문점이나 카페가 됐든 우아하게 브런치를 즐기는 가진 자들을 위해 밤을 꼬박 새워가며 프랜차이즈 음식을 만들어 내야 하는 이 땅의 가난한 여성들 또한 새벽 삼겹살 굽는 테이블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철야근무를 마치고 극도로 초췌한 모습으로 집에 돌아온 아내와 삼겹살을 굽습니다. 그 일은 정상 상태 시절의 그녀에게는 상상도 하지 못할 냄새와 느끼함입니다. 그러나 줄어든 내 벌이와 커져가는 집안의 씀씀이가 곤궁함을 벗어나지 못하는 지금 새벽 삼겹살은 따지고 가릴 것 없이 살아남아야 할 삶의 수단일 뿐입니다. 어떻게든 기운을 차려 다시 죽음 같은 잠으로 한낮을 보내고 다시 밤을 하얗게 견뎌내야 하는 의지의 에너지원일 뿐입니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가을 새벽. 불판에 손가락 데는 줄도 모른 채 삼겹살을 굽다가 자꾸만 추락하듯 깊어지는 세상과 인생을 생각합니다.

새벽부터 삼겹살을 구워 먹어야 하는 아내는 왕복 3시간 가까운 밤길을 오가며 철야노동을 해 왔습니다. 그 사이 나 또한 불면에 시달리는 나날을 보냈음은 희미하게나마 인간적 양심이 남아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당장 내년부터 시행될 예정이었던 50명 이상 300명 미만 사업장 대상의 한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가 계도기간을 주면서 처벌 유예 가능성이 예고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300명 이상 대규모 사업장의 계도기간 적용 연장과 처벌 유예를 되풀이하면서 노동시간 정상화에 대한 취지의 무색함과 의지의 부족을 의심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물론 경제성장률의 예상 전망치가 낮아지고 있고 세계적인 경기 하향추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음을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노동의 정상화에 대한 유예가 과연 대다수의 국민인 노동자의 입장을 고려한 것인지, 아니면 친 기업정책으로의 회귀는 아닌지 꼼꼼하게 따져볼 일입니다.

철야노동 공장에 다니는 아내는 말합니다. `가치 있는 삶'도 좋고 `저녁이 있는 삶'도 좋지만, 세상에는 내 몸을 돌볼 겨를 없이, 또 당장 내일이 포함된 장래를 살필 틈도 없이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하는 절박한 이들이 여전히 많다고. 그리고 획일적으로 제시되는 노동정책보다는 선별적이고 세심한 노동시장에 대한 조사와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굽히지 않습니다.

예외를 적용할 경우 원칙이 흔들릴 수 있으며, OECD국가 중 우리나라의 노동시간이 가장 길고, 더 나아가 휴식과 소비를 통한 삶의 가치 증진이 내수시장의 진작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내 원론적 설명은 목숨조차 미련 없는 슬픈 노동의 중독성 앞에 부질없는 일이 되고 맙니다.

삼겹살을 굽는 새벽. 총탄과 사냥개에 의해 피범벅이 된 멧돼지의 처절한 모습이 흐르는 아침 뉴스를 보며, 다시 <노동의 새벽>을 떠올리는, 우리는 누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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