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사회와 경직사회
투명사회와 경직사회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9.10.21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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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연지민 부국장
연지민 부국장

 

세상이 투명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선거 때만 되면 유언비어가 난무하고, 있는 자들의 뒷거래가 아무렇지도 않게 이루어지고, 권력의 폭력이 판을 치면서 소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대한민국이 좀 더 투명해지길 소원했었다.
전쟁 직후처럼 혼탁한 사회는 아니었지만, 1980년대와 90년대 성장 과도기를 지나오면서 많은 국민의 바람은 공정한 사회가 되길 희망했었다. 이는 부와 권력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과 능력에 따라 결실을 얻을 수 있는 그런 사회에 대한 열망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에 딱 맞는 말은 아니지만 몇 년 전부터 ‘투명성’이 공정사회의 조건으로 언급되고 있다. 투명성이 정착되면 신뢰사회를 담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오늘날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가 적어도 투명사회로 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정치나 경제, 사회, 일상생활 등 모든 분야에서 투명성이 강조되고 있고, 인공위성과 IT(Information Technology)의 도움으로 우리의 일상이 누군가 마음만 먹으면 유리창을 들여다보듯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투명’이 새로운 사회시스템으로 작동하면서 공정사회로 한 발짝 나아갔지만, 새로운 양상의 폭력도 대두하고 있다.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 관용의 여지가 사라지는 사회로 경직돼 가고 있다는 것이다.
조국 전 법무장관에 관해 우리 사회가 보여준 ‘투명성’의 잣대는 경직사회라는 또 다른 암울한 그림자를 보여주었다. 최고 공직자로서 자격(능력과 경험) 여부를 따져보는 청문회가 먼지 터는 수준으로 끌려다니면서 우리 사회가 얼마나 경직돼 있는지를 체감할 수 있었다. “공직이나 정치를 하려면 태어날 때부터 생활을 관리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극단적인 비유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오히려 두렵기까지 하다. 소시민의 일상까지 투명하게 공개되는 사회가 되면서 가벼운 언행조차 조심해야 하는 현대인들의 삶은 디지털 시스템의 폭력에 갇혀 경직되어 가고 있음이다.
그런가 하면 장관 후보자에 대해 투명성을 요구하는 국민의 소리는 엉뚱하게 이념논쟁과 정쟁으로 확산되면서 분분한 여론만 들끓었다. 투명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30년 전의 국민적 바람에도 유언비어는 가짜뉴스로 둔갑하고, 뒷거래의 죄목은 돈 없고 백 없는 사람에게만 적용되고, 권력을 잡으려는 눈먼 자들이 여전히 활개치는 정치판이 재현되고 있다. 투명성이라는 명목하에 더 복잡하고 미묘한 새로운 양상의 경직사회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투명사회에 대한 비판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한명철 독일 카를스루 대학교수는 책 ‘투명사회’에서 투명사회가 신뢰사회가 아닌 새로운 통제사회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책을 인용하면“신뢰 위에 세워진 사회에서는 투명성에 대한 집요한 요구가 생겨나지 않는다. 투명사회는 불신과 의심의 사회, 신뢰가 줄어들기에 통제에 기대려는 사회다. 투명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진 것은 사회의 도덕적 기반이 취약해졌다는 것, 진실성이나 정직성과 같은 도덕적 가치가 점점 더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도덕적 심급이 허물어지면서 그 자리를 투명성이라는 새로운 사회적 명령이 대신한다.”고 말하고 있다. 성과주의, 자본주의로 질주해온 대한민국의 민낯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실수와 관용이 허용되는 사회, 투명하되 경직되지 않는 민주주의 사회는 요원한 것인지 화두처럼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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