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외투쟁 유통기한 지났다
장외투쟁 유통기한 지났다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9.10.20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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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자유한국당이 조국 전 장관 사퇴 후에도 장외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아직 성에 안 찬 모양이다. 황교안 대표는 “이 나라를 정상으로 되돌려 놓기 위해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호언했다. 장외집회를 무기한 끌고 가기로 작정한 것으로 보인다. 황 대표는 현역 의원이 아니다. 원외인 그로서는 당이 국회로 복귀하고, 그에 따라 당을 담당하는 언론까지 국회로 거점을 옮기면 얼굴을 알리기 어려워진다. 당이 국회 밖에서 가동해야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킬 수 있는 그에게는 장외투쟁이 유리한 전략일 터이다. 그렇다면 당에도 장외투쟁 연장이 득이 될까. 당 안에서조차 부정적인 전망이 나온다

한국당은 지난 19일 굉화문 집회를 열며 참가인원을 의원들에게 할당했다. 현역 의원은 400명, 원외위원장은 300명, 비례 의원은 150명 이상을 참가시키고 보좌진은 전원 참가하도록 했다. 시민집회가 아니라 한국당 집안 행사로 폄하될 수밖에 없다. 요즘은 시골 지자체도 행사에 주민 동원을 하지 못한다. 군사정권 시절에나 가능했던 동원행정, 관제시위를 높아진 민도가 더 이상 용납하지 않는다. 전진 기어가 고장 난 한국당의 현재가 읽혀지는 대목이다.

같은 시각 국회의사당 앞에서도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진보단체의 집회가 열렸다. 조국 대전으로 갈라진 민심이 이번에는 검찰개혁을 놓고 대립하는 모양새다. 여론이 대의기관인 국회가 아니라 거리에서 충돌하는 모습은 정치의 실종과 부재를 의미한다. 그래서 많은 시민들이 그동안 광장을 선동하며 직무를 유기해온 여야에 엄중하게 책임을 묻고 있는 것이다. 한국당의 장외투쟁 연장은 중도의 질책을 외면하는 악수가 될 공산이 높다.

한국당은 조국 사태를 맞아 모처럼 승기를 잡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된 후 위축됐던 보수가 오랜만에 기지개를 켜고 결집력을 과시했다. 조국 사퇴를 이끌어 냄으로써 나름 투쟁력을 발휘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여론조사에서도 선전을 거듭해 역전 가능성까지 바라보게 됐다. 그러나 한국당이 간과하는 것은 지금의 성과가 상대의 자살골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이다.

명승부를 기대하고 축구장을 찾은 관객들은 자살골로 얻은 승리를 진정한 승리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한국당에서는 부끄러운 승리에 도취된 분위기다. 자살골로 득점한 팀이 진정한 승자로 대접받으려면 자력으로 골을 더 넣어야 한다. 한국당이 지금 할 일은 `우리 힘만으로도 골을 넣을 수 있다'는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명분도 사라지고 동력도 떨어진 장외집회에서는 수권 정당의 역량을 입증하기도 평가받기도 어렵다.

한국당은 조국 사퇴를 불러온 일등공신으로 자신들의 장외투쟁을 꼽을 지 모르겠지만 당 밖의 판단은 다르다. 촛불과 태극기 시위에도 동요하지 않고 여론조사를 통해 냉정한 입장을 견지해온 중도층과 무당파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간의 한국당 장외투쟁은 보수의 결집을 일궈냈지만 흔들리는 중도의 마음까지 사지는 못했다. 진보적 가치를 훼손한 민주당이 싫어졌지만 그렇다고 변화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 한국당을 지지할 수는 없다는 것이 중도층의 심정이다.

검찰개혁은 더 이상 한국당이 피해갈 수 없는 현안이다. 조국을 반대함으로써 한국당에 힘을 실어준 중도층도 대체로 개혁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야당이 검찰을 능가하는 무소불위 권력기관의 등장을 경계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총선을 앞두고 한국당을 탄압하는 게슈타포가 될 것'이라는 식의 어설픈 반박으로는 내 편뿐인 거리의 박수밖에 얻을 것이 없다. 야당만 할 생각이 아니라면 국회로 돌아가서 설득력 있는 논리로 국민들과 소통해야 한다. 정면 승부를 피하고 거리를 전전하다가는 조만간 자살골로 동점을 허용했다는 조롱을 받게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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