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성긴 그물
하늘의 성긴 그물
  •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 승인 2019.10.17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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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우리가 환호하며 기뻐했던 삶뿐만 아니라, 슬퍼하며 아파했던 삶까지, 또한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의 경험하지 못한 인류의 모든 발차취가 역사다. 역사는 시간적으로 이미 흘러간 과거일 뿐이다. 그러면서도, 어떠한 역사 인식을 갖느냐에 따라 현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이고, 미래의 삶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이정표 역할을 하는 것이 역사다.

이 같은 까닭에 `역사란 무엇인가'의 저자 에드워드 카(Edward Carr)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며 “과거의 사실과 현재의 역사가가 나누는 대화”라는 유명한 명제를 남겼다. 에드워드 카에 의하면, 단순히 과거의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과거의 역사를 가지고 어떠한 역사 담론과 역사지식을 생산해, 얼마나 올곧은 현재를 살아가는데 잘 활용하느냐가 관건일 뿐이다.

따라서 역사는 그렇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던, 당시 상황에 대한 정확한 분석 및 이해는 물론이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갖는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 및 가치관에 따라 재구성되고 재평가돼야 한다. 단순히 과거의 사실들이 어떠했는가보다는, 과거의 역사적 사실들을 통해 올곧은 역사 인식을 키우고 교훈을 얻어야 한다. 현재와 미래의 삶이 보다 더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방향으로 변화 진보해 갈 수 있도록 과거의 역사를 타산지석(他山之石) 내지 반면교사로 삼을 때, 역사의 의미가 보다 증폭되면서 명료하게 되살아나리란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 같은 맥락에서 오랜 세월동안 `부마사태'내지 `부마 폭동'등으로까지 비하됐던, `부마민주항쟁(釜馬民主抗爭) 또는 부마민중항쟁(釜馬民衆抗爭)이 올해 처음으로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데 이어, 지난 16일 오전 경남 창원시 경남대학교 운동장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제40주년 기념식이 거행돼 희망찬 대한민국의 앞날을 예고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기념사를 통해 “부마민주항쟁은 우리 역사상 가장 길고, 엄혹하고, 끝이 보이지 않았던 유신독재를 무너뜨림으로써 민주주의의 새벽을 연 위대한 항쟁”이라고 역설했다.

부마민주항쟁은 1979년 10월 16일부터 10월 20일까지 부산직할시(현 부산광역시)와 마산시(현 창원시)에서 유신 체제에 대항한 항쟁을 말한다. 10월 16일에 부산대학교 학생들이 “유신철폐”구호와 함께 시위를 시작했고, 다음날인 17일부터 시민 계층으로 확산했으며, 18일과 19일에는 마산 지역으로 시위가 확대됐다. 당시 박정희 유신 정권은 10월 18일 0시를 기해 부산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66명을 군사 재판에 회부했으며, 10월 20일 정오 마산 및 창원 일원에 위수령을 선포하고 군을 출동시킨 후 민간인 59명을 군사재판에 회부한 바 있다.

부마빈주항쟁은 박정희 정권 내 갈등을 부추겨 긴급조치로 유지되던 유신독재 체제의 종말을 앞당긴 계기가 됐으며, 훗날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및 6월 항쟁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부산지역과 마산 지역의 학생과 시민들이 유신독재에 항거한 부마민주항쟁은 4.19 혁명, 5.18 민주화 운동, 6.10 민주항쟁과 더불어 한국 현대사의 4대 민주항쟁으로 꼽히며, 지난 9월 24일 국가기념일로 지정됨으로써, 민심(民心)이 곧 천심(天心)이며 모든 일들은 결국엔 올바름으로 귀결된다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을 여실히 입증했다. 문득 노자께서 도덕경 73장을 통해 설파했던 “天網恢恢(천망회회) 疎而不失(소이불실)”즉, 하늘의 그물은 넓고도 넓어서 아주 성긴 듯하지만, 그 무엇도 놓치는 법이 없다는 말이 실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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